내 생각은

파랑새 증후군 / 파랑새

#경린 2015. 7. 24. 20:46

 

경주 흥덕왕릉 소나무숲


파랑새
1906년 모리스 메테를링크가 6막 12장으로 쓴 아동극
1908년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 연출의 파랑새 -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공연
1909년 파리의 파스켈 출판사를 통해 대본 출간 -> 동화로 각색
주인공 : 틸틸과 미틸(우리나라에서는 '치르치르' '미치르'로 쓰이는데 이는
            일본어로 번역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온데서 야기 됨) 

 


파랑새 동화
소년 틸틸과 소녀 미틸에게 어느 날 늙은 요정이 찾아온다. 요정은 한 아픈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파랑새가 필요하다며 남매에게 파랑새를 찾아 줄 것을 부탁한다.
요정은 틸틸과 미틸에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모자를 건네고,
그 모자를 쓴 아이들의 눈 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 진다.
늙은 요정이 젊고 아름답게 보였고, 물, 우유, 사탕, 빵, 불, 고양이, 개의
영혼을 볼 수 있게 된것이다.
그렇게 틸틸과 미틸은 영혼들과 함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시간의 안개를 뚫고 추억의 나라에 도착한 틸틸과 미틸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지만, 파랑새는 찾을 수 없었다.
밤의 궁전으로도 가보지만 그 곳에도 역시 파랑새는 없었다.
이어 숲과 묘지, 미래의 왕국을 전전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파랑새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틸틸과 미틸은
영혼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틸틸과
미틸은 집안의 새장에 있던 새가 바로 파랑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틸틸과 미틸이 반가운 마음에 새장을 여는 순간, 파랑새는 멀리 날아가 버린다.

 


이야기 속의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한다.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지만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게 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행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출처 : 두산백과에서 가져옴

 


파랑새 증후군
위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에서 유래한 파랑새 증후군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이상만 추구하는 병적인 증세를 말한다.
또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현재 직업에 만족을 하지 못해
욕구불만이나 갈등, 스트레스 등의 심리적 긴장으로 의욕이 상실되고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하는 증세이다.

 


이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신조어는 어디서 출몰한 것일까?
청년실업률이 장년 실업률의 3~4배에 이르며 졸업생의 타이틀보다는 재학중이라는
신분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여 졸업을 미루고 있는 와중에
수만 명이 응시했던 서류전형의 경쟁을 뚫고 어마무시한 계단을 밟아 첩첩이
치루었던 면접을 거쳐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취업전쟁 승리의 고지에 올라 선 이들이 있다. 졸업을 유보하고 있는 학생들이나
취업재수를 하고 있는 이들이 볼 때는 선망의 대상인 그들 마저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더 나은 꿈을 이루기 위해 과감히 퇴사를 하거나 이직을 꿈꾸며 더 많은
스펙 쌓기에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함에 '파랑새 증후군'이란 말이 나왔다한다.

 


현실에 닥친 생활고 해결이 급선무라 우선 차선책으로 택한 것
또는 아직 자기가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찾지 못한 경험과 배움의 쌓음이 아니라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고지에 서고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어울리지도 그럴듯하지도 못하다는 생각에 다시 거창한 꿈을 쫓거나
남들보기에 그럴듯한 직장을 다니기 위해 졸업을 유보하고 취업 재수,
삼수를 하며 그 나이에도 부모님께 손벌려 취업사교육까지 받고 있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진자는 더 가질려 하고, 권세를 누린자는 더 누리려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싶기도 한데 이 파랑새 증후군은
주로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 정신적인 성장이 늦는 사람이나
부모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경우에 나타나는 증세로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누군가가 줄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거나
허상만을 쫓아다니다 세월만 보내게 되는 경우가 더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가능성을
현실에 충실하며 튼실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거품 가득한
허상만을 쫓는 거창함이 아니라 나에게 어울리는 소박함을
또한 존재의 행복은 내 안에 있음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심어 주어
파랑새의 의미가 가진 '행복'과 '행운'이 날파리 처럼 날아다니는
저 안스러운 신조어를 기 펴지 못하게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기가 찍어 온 파랑새 사진을 보며 주저리 주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