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반칠환 시집 '웃음의 힘' 중에서

#경린 2015. 8. 26. 20:34



일찍 늙고 보니 / 반칠환 어머니는 마흔넷에 나를 떼려고 간장을 먹고 장꽝에서 뛰어내렸다 한다 홀가분하여라 태어나자마자 餘生(여생)이다
아마도 반칠환님의 어머니께서는 늦은 나이에 뜻하지 않게 아이를 가져 모질게 그 생명을 지우려했었나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어 덤으로 산다고 생각한 삶도 그리 녹록치않았던 듯합니다. 삶 / 반칠환 벙어리의 웅변처럼 장님의 무지개처럼 귀머거리의 천둥처럼 감꽃 / 반칠환 장독대 우에 감꽃이 지네 투욱- 이승에서 저승으로 장맛이 익는 사이

 



"시란 무료한 일상에서 기지개를 켜다가 은하수 천정의 별들과 부딪힌 흔적들이다. 우수수 내게 전율을 주었던 그 찰나적 감전의 기억들이다."라고 말한 시인의 말처럼 그의 시들 가운데는 달팽이나 박꽃, 딱따구리, 갈대처럼 그가 한번 슬쩍 마주친 '작은 자연'들을 노래한 시들이 있습니다.
박꽃 / 반칠환 가슴 속에 시인과 도둑이 함께 살아 담을 넘다가도 달빛 시나 짓고 온다 탈탈 털어봐야 이슬 장물 몇 점 지기가 아침에 "밤에 피는 박꽃이 아직도 피어있네"하며 핸폰으로 찍어 보내준 하얀 박꽃을 보며 나는 그저 아이고 예뻐라 그 생각밖에 아니 들었는데....^^ 갈치조림을 먹으며 / 반칠환 얼마나 아팠을까? 이 뾰족한 가시가 모두 살 속에 박혀 있었다니 참으로 남다른 직관과 익살이 번뜩이게하는 시에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웃음의 힘』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3~5행으로 짧은 시들인데 고질병과 같은 나쁜 버릇들을 고치겠다고 호언하는 사람들을 빗댄 시는 단 1행이기도 합니다.
뻐꾸기의 서원(誓願) / 반칠환 지빠귀를 밀어내지 않는다 "말을 다함이 있어도 뜻은 무궁한(언유진이의무궁言有盡而意無窮) 시 세계를 추구하고 싶다. 화려한 수사를 다 쳐냈다. 독자들과 간명하게 소통하려고 했다"라고 한 그의 시를 대하는 정신은 모순 많은 세태를 촌철살인의 시어들로 꼬집을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떤 기구(祈求) / 반칠환 제단에 돼지머리를 바치며 빈다 아무도 아무를 해치지 않는 세상 되게 하옵소서 공범 / 반칠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사람이 노래하자 제초제가 씨익 웃는다



"꽃잎 하나를 지렛대로 일상의 무게를 번쩍 들어 올리는 것, 그게 시이며 예술의 감동이다."라는 그의 시에는 유머가 있고 긍정의 힘이 있습니다.
웃음의 힘 / 반칠환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하얀 박꽃을 받고 반칠환님의 시집 『웃음의 힘』에 실려 있는 시들과 '동아일보'의 글을 가져와 엮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