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도서관에서 만난 여자-나기철 / ㅎ양-서정주 / 문둥이-서정주

#경린 2015. 8. 20. 22:03

 



도서관에서 만난 여자 / 나기철 집에 가려고 참고열람실에서 일어나 개가열람실을 지나는데 안에 서 있는 한 여자! 다시 보려고 다가가니 자동문이 닫혔다 두드렸으나 열리지 않았다

 



미당은 『ㅎ孃』이란 시에서 '아이갸나!'라는 예쁜 감탄사를 쓴 바 있는데, 이 시를 대하니 그 유쾌하고 간지러운 찬탄을 잠깐 빌리고 싶어진다. '저 여자'의 아마도 고요할 듯한 이쁨과, 문득 눈이 멎은 순간의 화자의 설렘은, 또 미당을 빌린다면, "물빛 라일락"스러운 것일 듯하다.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같이 눈부신 것일 듯하다. 하늘님이나 슬며시 눈치채실 이런 복된 순간에 우리 생은 남모르게 한번 환히 피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또, 그것은 또 여린 그늘이 그렇듯이,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이 그렇듯이, 잡히지 않는, 아무도 모르게 손 사이로 빠져나가고야 마는 것이어서, 마침내 한 순결한 쓸쓸함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중에서

 



'아이갸나!' 전라도 방언인지 순 우리말인지는 잘모르겠지만 경상도에서는 안타까움의 감탄사로 이 말을 흔히 사용한다. "아이갸나~ 아까비" -> 아이고 아깝다. "아이갸나~ 이기 무신일이고?" -> 이런 이게 어찌된일이지? 김사인님의 글을 읽으니 'ㅎ양'이라는 시가 또 궁금해졌다. 서정주님께서는 아이갸나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ㅎ양<ㅎ孃> / 서정주 실버들 늘어진 네 갈림길에서 이뿐 암여우가 둔갑하여 「아이갸나!」튀어나오는 아지랑이랄까? 그 허리 사향주머니랄까? 그 때 성황당에 걸어논 비단 헝겊이랄까? 나는 선잠에서 깬 어느 때부턴지 바람 불 때마다 싸아한 여기 말리어 헤매 다니고 있었다. 여러 달밤이 이울 때까지 전신주처럼 서서 울며 또 양말 뒤축이 다 빵구나도록 이 도장(道場) 안을 헤매다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풀려나기 비롯한 것은 내 빵구난 양말의 발꼬린내에 그네가 드디어 못견디어서 양말 안 빵구나는 사내에게로 살짝 그 몸을 돌려버린 그때부터다

 



미당은 한 여대생을 혼자 지독하게 짝사랑하였다고 한다. ‘나는 당신의 옷고름 하나에도 감당하지 못할 버러지 같은 겁니다.’ 이렇게 열렬히 연애편지를 써 보내지만 답장 한 번 받지 못하고 찾아가 보기도 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하고 냉랭하기만 한 그녀의 언저리만 헤매며 혼자 냉가슴을 앓았다한다. 이때 나온 작품이「문둥이」라는 시란다.
문둥이 / 서정주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문둥이는 하늘이 내린 고칠 수 없는 형벌과 같은 병이었다. 애기의 간을 빼먹으면 낫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도 없는 천형의 무시무시한 형벌이라 사람들의 멸시와 차갑고 따가운 천대를 받으며 외토리로 살아야했던 문둥병환자 짝사랑의 아픔이 얼마나 고독하고 지독하였으면 이런 시를 썼을까 미당에겐 정말 가슴 아픈 짝사랑의 실연이었나보다.

 

 



미당은 그의 시 『나의 결혼』에 나오는 찬찬히 고부라져 거듭거듭 깨끗이 김칫거리를 씻던, 아버지가 정해준 야무진 색시와 만 스물세살 때 결혼을 하여 평생을 살다가 가셨다. 물론 중간중간에 바람기가 있기도 하였지만.....^^ 좌우지간 그렇게 몇 해 뒤 미당은 아내와 큰 아이를 데리고 고향에서 상경하는 열차 안에서 우연히 그 여대생을 만나 잠깐 인사말만 나누고 헤어지게 되는데 그녀는 어떤 여인을 시켜 미당에게 넌즈시 만나고 싶은 의향을 전한다. ‘모월 모일 개성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무엇하시면 동행하시라구요’ 미당은 그 자리서 거절했단다. 바로 위 시 <ㅎ양>의 주인공이 짝사랑하였다 우연히 해후한 그 여대생이다. 얼마나 아프고, 아쉽고, 매정했으면 이런 시가 나왔을까. "아이갸나~ 안타까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