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곳 영주 소수서원

#경린 2016. 2. 21. 01:59

 

경북 영주시에 있는 소수서원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 서원입니다.

 

 

원래 사찰터였던 곳이라 당간지주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햇살을 숨겨버린 2월 바람의 차가움 속에서도

소수서원의 소나무 자태는 처연하면서도 웅장하니 아름다웠습니다.

 

 

살얼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죽계천

수심이 아주 깊다고합니다.

 

 

징검다리를 퐁당퐁당 건너갑니다.

 

 

당산나무?? 당산줄?? 서낭당??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질 것 같아 딸냄이랑 이뿐돌 하나씩 주워

정성 스러이 올려두었습니다. ^^

 

 

 

자연을 벗삼아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다는 정자 취한대

 

 

 

취한대를 지나 소수박물관쪽으로 향했습니다.

자박자박 오손도손 걷기 좋은 산책로입니다.

 

 

죽계천의 풍경이 겨울의 기운을 아직은 안고 있었지만

아름답고 운치가 있어 딸아이도 아! 좋다 소리를 연발하였습니다.

 

 

죽계천에 놓인 다리를 지나가면 소수서원으로 갑니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우리는 소수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박물관 옆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석당 김종호선생님의 전시를 먼저 둘러 보았습니다.

 

 

 

전시관 주위의 유물들도 둘러보고 박물관을 둘러 보았는데

사진촬영금지 사진은 못 찍었습니다.

소수서원 가시면 꼭 한 번 둘러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박물관을 나와 선비촌으로 향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등 역사극의 촬용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영주나 풍기에 있는 고택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지어 놓아 둘러 볼 수 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선비촌을 둘러 보고 다시 되돌아 나오니 죽계천이 나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 소수서원으로 갑니다.

 

 

주세붕이 처음 서원의 터를 닦은 뒤, 안향의 후손으로 경상감사로 부임한 안현은

경상도의 각 고을에 협조를 요청하여, 서원에서 일할 노비와 제수에 필요한 식량,

어염(魚鹽) 등을 확보하고, 서원의 관리와 운영을 위한 운영 규정을 정하여 서원의

원장 임명 문제와 원생의 정원수, 제향 절차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백운동 서원이 보유한 전답 30결(9만 평)에 어장과 염분 및 보미(寶米)도

운영하게 되면서 서원은 토대를 굳히게 되었고, 조선 명종 5년(1550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해 와서는 서원의 격을 높이고자 (宋) 시대의 예를 언급하며 국가에서 서원에 대한

합법적인 인정과 정책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 마침내 당시의 국왕이었던 명종은 친필로

「소수 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篇額)을 서원에 하사하고 아울러 사서오경과

《성리대전》등의 서적, 노비도 내렸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져버린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데서 온 말이었다.

 

백과사전에서 가져 옴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서 선비촌도 서원내의 마당도

물기가 많아 많이 질퍽질퍽 하였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서원에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었습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주변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라 둘러보는 내내 맘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적송 사이로 아침안개가 피어오를 때도

황금빛 햇살이 나뭇사이를 비칠 때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진사님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합니다.

 

 

서원 바로옆 적송 소나무 숲 학자수림

추운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선비가

되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오랜세월의 깊이 만큼 소나무 숲은 그 기품과 운치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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