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청마 유치환 생가

#경린 2016. 7. 5. 20:27



해가 질 즈음에 청마문학관에 도착하였더니

문학관은 이미 문을 닫은 뒤라 아무도 없고

문학관 입구의 고목 팽나무만이 늦은 손님을 반겼습니다.


시비와 함께 서 있는 청마동상옆에 서 보라기에

팔짱 끼며 서 보았습니다.^^

실물크기보다는 큰 듯한데.....실제로 청마유치환선생님이

이렇게 큰 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먼데를 그리운 듯 바라보고 있는 얼굴모습은 닮은 듯도 했습니다.


문학관 옆에 생가가 있어 살짝 들어가 보았습니다.

청마가 태어난 1908년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초록의 담쟁이 덩둘로 뒤덮인 돌담으로 둘러 쌓인 고요한 청마생가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온통 초록의 잔디로 덮여 있고

우물, 절구통, 장독대가 정겹게 다가옵니다.




우물위에 오도마니 앉아 불청객인 우리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던 고양이


집뒤로는 잘 가꾸어진 제법 넓은 채마밭도 있었습니다.



거제도(巨濟島) 둔덕(屯德)골 - 유치환

 

거제도 둔덕골은

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 안 다가솟은 산방(山芳)산 비탈 알로

몇 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모양

두고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 번이나 불어 왔던가

시방도 신농(神農)적 베틀에 질쌈하고

바가지에 밥 먹고

갓난것 데불고 톡톡 털며 사는 칠촌(七寸) 조카 젊은 과수며느리며

비록 갓망건은 벗었을망정

호연(浩然)한 기풍 속에 새끼 꼬며

시서(詩書)와 천하를 논하는 왕고못댁 왕고모부며

가난뱅이 살림살이 견디다간 뿌리치고

만주로 일본으로 뛰었던 큰집 젊은 증손이며

 

그러나 끝내 이들은 손발이 장기처럼 닳도록 여기 살아

마지막 누에가 고치되듯 애석도 모르고

살아생전 날 세고 다니던 밭머리

부조(父祖)의 묏가에 부조(父祖)처럼 한결같이 묻히리니

 

아아 나도 나이 불혹(不惑)에 가까웠거늘

슬플 줄도 모르는 이 골짜기 부조(父祖)의 하늘로 돌아와

일출이경(日出而耕)하고 어질게 살다 죽으리환


<울릉도> 행문사 1947



 

어구 해석


부조(父祖) :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는 조상.

두락(斗落) : 마지기. 한 말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면적. 평지, 산지, 토지의 비옥도 등에

                      따라 다름. 보통 논은 200평, 밭은 300평을 한 두락이라 함.

조약(調藥) : 과학적인 근거는 제시할 수 없었지만 효과가 우리들의 생활사를 통해

                     입증(立證)되며 치료약. 머리카락, 개털, 꿩 발, 앉은뱅이풀, 옥수수수염, 설탕,

                      소다, 된장, 식초, 담배, 숯, 심지어 화장실에 고인 물까지도 조약으로 쓰임

신농(神農) : 중국의 농업, 의약, 음악, 점(占), 경제의 신. 중국 문화의 원천

날 세고 : 날 새고의 방언. 옛 농부들은 날만 새면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갔다는 말.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인 듯합니다.

물질적으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대대손손 살아왔던 터전과

고향에서의 과거나 유년의 기억은

타향살이에 지치고 삶이 버거워질 때 훌훌 털어버리고

오로시 있는 그대로 돌아가고픈 그리움인 것인데

요즘아이들...하기는 저만하더라도 돌아가고픈 그리움의 고향집은 없네요.

대대손손 살아왔고 유년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고향집이라는 것은

이제 정말 아주아주 옛말이 된 듯합니다.



가고 돌아오지 않는 아름다움


웃대에는 자주 눈이 내리는 모양인데, 여기는 새해 들어서도 연일 조금 흐렸다가

벗겨지는 날이 있을 뿐 맑은 날씨가 계속이다. 그래 이상건조하고

산불 들을 조심하라고 측후소의 경고까지 나돌고 있다.

이 겨울엔 내 건강이 아무래도 좋지 못해 조금만 등이 시리다고 느끼기만 하면

코가 막히곤 하는데도 북녘의 먼 산에 백설이 얹힌 원경이 몹시 그리워진다.


청마의 마직막 일기 (1967년 1월 12일)


60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청마유치환의 마지막 일기라고합니다.

그 때에도 남쪽지방은 눈구경하기가 어려웠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