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고택의 품격 구례 운조루와 섬진강

#경린 2016. 6. 30. 16:28


사진출처 - You Tube




오미마을


영조52년(1776년)에 문화류씨 류이주가 풍수지리설에 의한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운조루(雲鳥樓)를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다.


마을의 안산이 되는 오봉산이 기묘하고,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이 길하며,

물과 샘이 족하고, 풍토가 모두 질박하며, 터와 집들이

살아가기에 좋다하여 오미리(五美里)라 불리고 있다.


- 오미마을입구 안내문에서 가져온 글 -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 1690~1752)도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살기 좋은 곳으로 꼽아 마을 사람들에게 믿음을 더해 주었다.

운조루(雲鳥樓)의 집터를 '금가락지가 떨어진 모양'으로 보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다음백과사전에서 가져온 글


운조루 옆으로 구례군에서 조성한 한옥마을


마을 앞으로 지리산에서 내려온 실개천이 흐르고

전체적으로 평온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운조루의 맞은편 오봉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는 운조루 앞 연지

이 연못은 과거 200평이 넘는 크기였는데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합니다.

못 가운데 소나무를 심고 다리를 놓은 것이 특이하였습니다.



운조루 정문 양 옆으로 길게 행랑채가 있고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나옵니다.


운조루는 구례 지리산 화엄사 인근에 자리한 고택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의

주거환경을 엿볼수 있는 좋은 사료이자 훌륭한 문화유산입니다.



운조루 앞으로도 개울이 시원하게 흘렀는데 수량이 아주 풍부하였습니다.



운조루 사랑채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오고 사랑채가 먼저 보입니다.

사랑채 가운데 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갑니다.




운조루의 측면을 보면 방들이 엄청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99칸의 큰 규모였으나 현재는 63칸 정도 남아 있다합니다.



타인능해


"타인능해"란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나무독에 쌀을 채워놓고

마을에 가난한 사람이 끼니를 이을 수 없을 때 마개를 돌려 쌀을 빼다가

밥을 짓도록 허용한다는 뜻으로 쌀독의 마개에 "타인능해"라고 써 놓았음


각종 민란, 동학, 여순사건, 6.25전쟁 등 힘든 역사의 시간을 지내면서도

운조루가 지금처럼 건재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바로 이 타인능해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타인능해" 안내문에서 가져온 글



쌀독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옆에 좀 더 큰 저장고 처럼 보이는 나무 통이 있었습니다.

한 번에 한바가지 정도만 쌀이 나오게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안채로 들어서면 그 유명한 장독대가 제일로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저 키큰 나무가 백목련나무입니다.

이른봄에 하얀 목련이 피었을 때의 아름다운 운조루 장독대의 모습을

담기 위해 전국의 진사님들께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안채 마루에 앉아서 바라다 본 모습



안채가 활석을 쌓아 올린 단 위에 있어 마루에 앉으니 마당이 한참 내려다 보였습니다.

운조루가 위치한 곳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이다보니

넓은 대지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여 개방적으로 짓는 전라도 한옥과

높이를 강조한 경상도 한옥이 잘 조화를 이룬 건축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살강이라고 하나요?

시골집의 정겨움을 보는 듯...^^


처마에 제비가 둥지를 짓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제비를 보니 고택 이름의 유래가 생각나 담아 와 봤습니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위를 나르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디 이집의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글이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 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 오네>의

문구에서 첫머리 두 글자를 취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가져온 글


가마솥이 세개나 걸쳐지는 부뚜막이니 이집의 살림살이 규모가 짐작이 됩니다.



건축적으로 사랑채의 누마루가 운조루의 중심이라면,

생활에서는 안채, 특히 '큰 부엌'이 운조루의 중심이 된다.

운조루에서 풍수는 매우 중요한 건축 요소다.

때문에 이 집의 부엌에도 풍수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유이주가 집을 짓기 위해서 땅을 파다 보니 지금의 부엌 자리에서

거북 모양의 돌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 돌이 최근까지

전해 내려오다 누군가의 손을 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수명을 뜻하는 거북이 나온 자리에 부엌을 들인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음백과사전에서 가져온 글



부엌에서 나오면 우물이 있는 뒷마당이 나옵니다.

여인네들의 공간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던 듯 집의 규모에 비해 뒷마당은 협소한편이었습니다.


현재는 나이 많은 종부가 홀로 힘겹게 이 큰집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데

역부족이라 운조루를 찾는 이들한테 특산품도 팔고 입장료도 받게 되었다합니다.

대문들어가는 입구 행랑채에 거처를 하시면서 입장료를 받으셨는데

혹여 출타하고 없는 동안에 방문을 하시더라도 입장료는 내고 들어가시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택의 종부가 지금도 빨래를 하는 빨래터입니다.


마을에서 보면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풍경입니다.

지리산 아래쪽을 흐르는 섬진강은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높은 산이 뒤에 있고 큰 강이 흐르니 이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풍요로운 땅으로 유명합니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섬진강을 따라 달리면 강바람도 시원하고 당연 경치도 좋습니다.


화개장터에 들러 냠냠 맛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화개장터에는 별거별거 다 파는데 그 중에서 약초파는 곳이 많습니다.

약초의 종류도 아주 다양하구요.


장터에서 제일로 높은 정자에 올라가 보면

주위 산들에 오목하게 둘러 싸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동하면 또한 벚꽃길을 빼놓을수가 없지요.

벚꽃필 때는 당연 장관이지만 꽃진자리 초록이들의 눈부심도

기분좋은 시원함과 울림을 줍니다.


강에서는 제첩을 체취하기도 하고 낚시도 하며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가득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또 물수제비를 한판....ㅎㅎ

저는 아무래도 운동신경이 제로인지 돌이 그냥 폭하고 빠져버립니다.

지기가 아무리 가르쳐도 안되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