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난리 난리 물난리

#경린 2016. 8. 3. 16:47



 

학생들 등원차량운행이 시작될 즈음, 전날과 같이 주위가 어두컴컴 해지더니 우루루쾅쾅 쏴아아 소나기가 겁나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외없이 천둥번개 소나기 때문에 학원을 못 온다는 전화를 몇 통 받고, 수험생 선호도 1위 교재라는 타이틀이 붙은 '현대시인 작품의 모든 것' 첫페이지 김소월의 <나의 집>과 <삭주 구성>을 읽고 또 읽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다급한 외침이 들렸습니다.

"원장니임~~!!!!!!!!!"

심상치않음에 반사적으로 튕기듯 일어나 소리나는 쪽으로 뛰었습니다.


"아니...이게 뭔일이고???"

때아닌 물난리가 났지 뭡니까

2층 비상구문 아래 틈새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물이 비상구 맞으편에 위치한 교무실을 덥치고 있는 긴박한 상황


비상구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보니 배수구가 막혔는지 갑자기 쏟아진 빗물이 첨벙첨벙 발목까지 차였고 어디로 갈지를 헤매다 비상구 문 틈새로 파고 들었다는 것을 담박에 알았습니다.

"이를 어쩌지? 배수구가 막힌 것 같은데"


베란다쪽에는 3층으로 연결되는 철제 계단이 베란다 가운데 폭을 다 차지 하고 있어 베란다를 이쪽저쪽으로 완전 분리 한 꼴이었고 배수구가 있는 쪽의 베란다에는 에어컨 외기가 여러대 놓여 있어 배수구가 어디 있는지 이쪽에서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일단 급하게 넘쳐서 강의실 쪽으로 들어가는 물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을 퍼 내었습니다.


저는 베란다에서 물을 퍼내고 선생님들은 교무실 전기 콘센트를 단속하고 교무실 바닥에 첨벙해진 물을 퍼내는 동안에도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비상구 문턱의 높이보다 물이 줄어든 그 몇 분의 순간...아이고 관세음보살....


비상구쪽 베란다에는 배수구가 없고 철제난간을 아슬아슬 원숭이처럼 타고 반대편으로 넘어갔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간도 커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은 발목 위까지 차, 내 발놀림에 따라 첨벙거릴 뿐 흐름은 전혀 느낄 수 없어 에어컨 외기 구석구석 더듬으며 배수구를 찾았습니다.


물속에 5대의 에어컨외기는 일부가 잠겨있고 5대는 그 외기 위에 놓여 있는데 10대 외기의 전기선이나 알 수 없는 호스와 선들이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은 왠지 무시무시하여 아무거나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베란다 한 쪽 구석탱이에 줄줄이 여러가닥의 가는 호스와 전기선 같은 것들이 떡밥 한덩이를 향해 머리를 쑤셔 박은 뱀장어무리의 꼬리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해 '이게 뭐지' 하고 한가닥을 살짝 잡아 당겨보았습니다. 


오 마이 갇 세상에나.......

가는 호스 하나가 까닥하고 움직이자 어디로 갈지 모르고 헤매던 물이 그 쪽으로 우루루 쏠리는게 아닙니까.

전기선이며 호스며 에어컨외기 시설을 하면서 나온 부산물들이 어제 내린 소나기에 배수구쪽으로 다 몰려 배수구를 꽉 막은 것이었습니다.

아차하는 찰라의 순간에 그 부산물 무리가 물과 함께 배수구로 딸려 들어가면 배수구 중간에서 막혀버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재빠르고 신속하게 호스, 전깃줄, 보온제나부랭이 등을 온몸으로 낚아챘습니다.

정말 모세의 기적 같이 물이 순식간에 빠져 나가는 것이 어찌나 신기한지.....세상에나....




남자어른팔뚝보다도 더 굵은 배수구 입구에는 거름망이 없었습니다. 널판지 모양의 플라스틱판을 일단 임시로 뻥 뚫린 구멍 위에 덮어두고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를 한아름 안고, 이 물난리가 나기 전 읽었던 김소월 <삭주 구성>의 '물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꼴'로 들어오니 교무실이 완전 물바다로 물난리가 나 있었습니다.


두 수학쌤이 쓰레받기로 떠내고 수건으로 짜내고, 아이들은 물난리 구경에 난리 북새통

아이들은 교실로가 고학년이 저학년을 학습감독하는 자습을 시키고, 창고로 가서 들통과 스폰지를 더 챙겨,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수업에 열중이신 2층의 다른 쌤들께도 SOS를 하여 사건발생 2시간여만에 모든 상황은 종료가 되고 평온을 찾았습니다.


학원강의실은 칸칸이 칸막이로 되어 있어 보기에는 벽과벽처럼 보이지만 바닥에는 틈이 있어 그 사이로 물이 비집고 들어가 교무실 옆 교실과 그 옆 교실, 그리고 전기선이 많은 랩실까지 물이 스며들었습니다.

"원장니임!!!!" 비명을 듣고 비상구 문틈으로 뿜어져 들어오는 물을 발견한 순간부터 베란다로 뛰어가 물을 퍼내기 시작하여 안으로 물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데에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습니다. 그 몇분 사이에 그야말로 순식간에 강의실이 물바다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물이라는게 겁나는 것이라는 걸 이번 일로 완전 실감하였습니다.


물이 작은 틈새로 스미듯 파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한계가 찻을 때 물밀듯 들이 닥친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밀듯의 실체를 생생하게 경험하고 나니 여름철 집중호우로 지리산 계곡에서 실종 된 사람이 남해 앞바다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2층 베란다 비상구쪽에서 에어컨 외기가 있는 쪽은 위험스럽게도 철제난간을 타고 넘어가야 하는지라 무섭기도 하고 그 쪽으로 넘어가 본 적이 없어 배수구가 그기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제가 이 쪽 학원건물에서 일한 지가 벌써 6년 이상인데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그 동안 무심하기도 했습니다.

배수구 위치를 평소 알고 있었더라면 그 물난리를 최소화 할 수 있었을텐데.....장마철을 맞아 베란다 배수구 주위 청소를 하였더라면 아예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텐데....하는 자책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근무하고 있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천만다행이기도 했습니다. 모두 퇴근하고 난 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졌더라면.....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기후인지 올해는 국지성 소나기가 지역마다 퍼붓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집 주위 배수구 점검 한 번 해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저도 이번 일을 계기로 2층 3층 뛰어다니며 배수구 점검 다 하였네요.^^


그나저나 손가락 마디마디, 손목, 발목, 다리, 어깨 등 자고 일어나니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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