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송광사 백일홍

#경린 2016. 8. 20. 18:55




청량한 바람이 시원한

송광사 입구 편백나무숲



처음 본 하얀 목백일홍


절집으로 오르는 여름 산길은 다른 계절보다 한적하여 느릿느릿 걷기에 좋습니다.

도심에서는 그저 따갑기만 한 햇살도 숲을 통과하면 한결 부드러워지고

찰랑찰랑 일렁일렁 춤추는 빛의 반짝임도 아름답게 들어옵니다.


그늘 지나는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어 땀방울 송송 맺히는 등허리를 스치고

지나갈때면 '아! 시원하다'소리도 절로 나옵니다.


세월아 네월아 오르는 걸음에도 더위가 내려 앉으면 계곡물에 발 담그고

송사리녀석들과 장난질도 칩니다.

산속 계곡의 물은 어찌나 차거운지 발만 담구어도 등에 딱 붙어 있던

더위가 머리를 통해 밖으로 싸악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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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어딜가면 한닭살하는 커플인데 우리보다 더한 강적을

여름숲길에서 만났습니다.

하얀티에 빨간빤스를 셋트로 맞춰입고 다정히도 걷는 모습이

젊은 연인같았는데 가까이서보니 우리보다 연배가 더 높은 듯 해 보였습니다.


사실 젊은 청춘일 때 못 해본게 한이 되어서리...ㅋㅋ

요즘은 어딜갈 때 우리도 셋트로 옷을 맞춰 입고 다니기도 하고

꼬옥 손을 잡고 다니기도 하지만....빨간빤스는  아무리 생각해도.....ㅎㅎ






붉은 백일홍 따라 길을 나섰던 길에 송광사 백일홍도 보고 가려고 절집에 들렀습니다.

한여름의 절집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따가운 햇살만이 절마당 하나 가득 모여 재잘재잘 시끄러웠습니다. 아마도 여름 동안은 내내 저 붉은 백일홍이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고향수


고향수는 보조국사께서 스스로의 불멸을 입증하기 위하여 심은 것이다.

높게 솟아 있는 이 고목나무는 보조국사께서 다시 송광사를 예방할 때

소생한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   - 송광사 안내문에서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 척주각과 세월각 앞에
높이 7미터쯤 되는 고사목이 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이 열반하기 전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자라났다가, 보조국사 열반 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보조국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고 전해지는 고향수입니다.

삐쩍 마르고 볼품없는 나무 작대기.....
그기에 담은 사람들의 소망 때문인지
요래조래 다시 보게 되는 듯합니다.



절집 마당의 목백일홍 붉은꽃은 제겐 특별한 그리움입니다.

초등학교시절 여름방학이면 외할머니 따라 방학 한 달을 절집에서

지냈던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방학기간이다보니 제가 머무는 동안 백일홍은 피고 지고

백일홍 나무도 나무아래 마당도 항상 발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로 땡감나무가 있었고 계곡물이 흘렀는데

그곳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터였습니다.

여름이라도 산속의 바람은 아직 익지 않은 땡감을 매일 저녁

몇알씩 떨구게 하였고 그걸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곳 주위에 돌맹이를

울타리로 쌓아 쬐꼬만 물웅덩이를 만들어 담궈 두면 송사리도 놀다가고

개구리, 두꺼비도 물장구 치다가고 그 위로 빨간 백일홍 꽃잎도

떨어졌더랬지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땡감은 삭아 맛있는 간식이 됩니다.


할머니께서 읍내로 볼일이 있어 나가시면 저는 종일 혼자 놀아야했습니다.

그럴땐 백일홍 그늘아래가 놀기에 제일로 좋습니다.

꽃잎을 모아 글도 쓰고, 하트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실에 꿰어 팔찌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고.......

그렇게 한참을 놀았는데도 할머니가 안 오시면 백일홍나무 뿌리에

걸터앉아 할머니 오시는지 산아래도 내려다보고 못 본 사이

절집 일주문 들어서나 문간을 보기에도 딱 좋은 장소가 백일홍 아래였습니다.


한번은 비 온 뒤 해거름 절집 마당에 독사가 나타났습니다.

절집 마당에는 종종 뱀이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꽃뱀을 잡으면 바로 숲으로 던지셨는데 독사라 그러셨는지

우리아기보살 물면 안된다며 백일홍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더랬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마자 백일홍에게 뛰어가보았지요.

밤새 독사를 매달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는데

독사를 매달았던 끈만 남아 뱀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었고

백일홍꽃잎은 나무아래  붉은 융단을 깐 듯 소복하였습니다.

비개인 여름아침의 그 짙고 또록한 색감 속의 붉은 백일홍꽃잎 꽃잎들....


뱀이 정말 혼줄이 났는지 그 뒤로 절마당에서 독사를 본 적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언젠가 절집에 갔다가 붉은 백일홍꽃을

가득 품은 노목을 보고는 불현듯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욕심없이 항상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시던 외할머니도 무척 그리웠습니다.



지난번 걸음에도 다음 발걸음하면 법정스님 머무

셨던 불일암에 가봐야지 했는데 날이 너무 더워

계곡 따라 오르는 산길을 멀찌기 바라다만 보며 또

다음을 기약하였습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한여름에는 절집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무엇보다 편두통이 너무 심하였기 때문이었지요.

증세가 심해 병원도 가 보고 한의원도 다녀보았지만 원인을 몰랐습니다.


그랬는데 지기랑 여름 산길을 한번 가고 두번 가고

이제는 큰 두통없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백일홍 붉은 웃음도 실컷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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