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가는 시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 - 도지민

#경린 2016. 10. 30. 20:38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 - 도지민

 

 

아무런 기별도 없이

이렇게 지루하게 비 내리는 날이면

문득

반가운 당신이 오셨으면 좋겠다,

 

비는 추적 추적 내리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발길 닿는데로 오다보니

바로 여기 였노라고 하시며

그런 당신이 비옷을 접고

젖은 옷을 말리는 동안

 나는

 

텃밭에 알맞게 자란 잔파를 쑥쑥 뽑아

매운 고추 너덧개 송송 썰어

파전 한장 바삭하게 굽고

시큼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로

냉면 한사발 얼렁뚝딱 만들어

오늘만은 세상 시름 다 잊고

덤으로 마주하는 단 둘만의 만찬

그런 눈물겨운 맛 한번 보았으면

참 좋겠다...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어느 날

저수지 산책을 갔다.

올해는 어찌어찌하다보니 비 오는 날

나들이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것도 가을날

 

아이들 어렸을 적에는 비가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실내가 굽굽한 것도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것도

우산 쓰고 나가야 하는 것도

내 옷이 신발이 젖는 것도

 

에이....비 오네...였다.

 

 

 

 

 

언제부턴가는 비가 너무너무 좋아졌다.

창 너머 후욱 치고 들어오는 흙내음도 좋고

멍하게 바라보게 되는 빗줄기 속에 어우러진 풍경이며

비 소리는 또 어쩜그리도 운치가 있는지

절로 커피잔 들고 창가에 서게 된다.

 

비 오는 날은 커피향도 더 좋고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그대 생각도 좋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비가 좋아졌다.

온세상의 파릇한 새싹들에 윤기를 더해주는

푸르른 봄비도

화분궁댕이 마다에 흙탕 그림을 그리며 내리는

장난스런 한여름의 소나기도

계절을 더 깊이 밀며 옷깃을 여미게하는

알록달록한 가을비도 

드문드문 눈송이 안고 휘날리듯 내리는

차가운 겨울비도

 

 

 

 

 

비 오는 날 가을 저수지를 한바퀴 돌고오니

옷이 다 젖었다.

신발은 지푸라기에 진이 엉겼고

바지가랭이도 흙탕이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이 귀차니즘이 아니라니.....

 

비 마저도 친구처럼 느껴져서...?

비 오는 날이 마냥 좋아서....?

그 보다는 비 오는 날..귀찮아! 싫어! 하지않고

나가보자, 맛난거 먹자, 여기저기 가보자 .....하며

함께 하는 친구같은 지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성격에 비 오는 날 저 들길을 혼자 나가 걸을리가...

당연 없다.^^

 

 

냉장고를 뒤져 땡초 넣고 부추전을 부친다.

 

 

 

사진 : 함안 입곡군립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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