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아름다운 섬 보길도

#경린 2018. 3. 3. 20:22



"봄이 기웃기웃 오는 듯한 데 남쪽으로 산보가자"

"싫어! 아직 넘 추워!!"

"아니야 설 쉬고 나면 큰 추위는 없을거야 시절도 절기는 못 속여"

"이렇게 추운데 무슨...."

"안 추울거야 가자?"

"춥기만 해 봐라.....죽는다! ㅋ"


그렇게 시작 된 올해 첫 여행지 보길도

날이 많이 춥지않을까? 아무리 땅끝 남녘이라해도 바다 섬인데....

참으로 절기는 못 속인다고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나고나니

확인히 와 닿는 바람의 속삭임이 달라졌습니다.

신기방기....^^



목적지가 보길도라 땅끝마을 해남은 살짝 스치기만 하고

배에 차를 함께 싣고 노화도 동천항으로 향했습니다.

노화도와 보길도를 보길대교가 연결 해 주고 있습니다.

보길도는 학교 다닐 때 국어교과서에서 먼저 만났던 곳으로

글과 말로 들을 때마다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하던 곳이었던지라

가는 길 자체가 참으로 많은 설레임이었습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이 즐겼던 세연정이 있는 보길도

세연정을 보길도 전체라고 생각하여서인지 보길도라는 섬 전체가 정원으로

아담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더랬습니다.


하지만 보길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었고 세연정은 항구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었습니다.

보길도를 가실 때는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유용할 듯합니다.

 택시를 이용하기도 하는 듯했습니다.

차 없이 다니기에는 너무너무 넓은 곳이었습니다.^^



세연정 가는 길에 보길 윤선도 문학관이 있습니다. 마당한 쪽에는  비석이 있고

윤선도 선생의 보길도 생활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윤선도 원림으로 들어서면 부용동 골짜기 입구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세연정이 나타납니다.

세연정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으로 고산선생이 직접 조성한 생활공간이자 놀이공간입니다.

우리나라 정원을 대표하기도 하는 세연정 함께 둘러보시지요.^^



아직은 겨울끝이라 황량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서도 정원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오랜세월이 묻어오는 고목의 뿌리와 자태, 그 옛날부터 그자리에 있었을 바위들

정원을 아우르는 이끼 끼인 돌담, 해풍에 부드러운 흙길



뒷산에서 흘러 내린 작은 내를 막아 꾸민 정원 그 중심에 있는 세연정입니다.

겨울 나무들로 싸인 정원임에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정자의 형태는 소쇄원이나 명옥헌에서 보았던 정자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세연정에 걸터 앉아 내려다본 연못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 내려다보니 그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돌을 차곡차곡 쌓은 동대 서대 옆으로 봄햇살 가득 받아내며 반짝이는 상록수림이 이뿐 길

남녘의 섬이라 그런지 발 닿는 곳마다 동백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세연정 내에도 상록수들이 많아 언듯보면 겨울이 아닌 듯 느껴집니다.^^


판자모양의 돌을 굴뚝처럼 만들어 놓은 다리로 일명 굴뚝다리로 불리는 판석보

세연지에 물을 가두기 위한 시설이라고 합니다.

물이 많을 때는 푹포처럼 넘쳐 흐르는 물이 아름다울 듯한데

겨울가뭄이 심해 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판석보 굴뚝다리를 건너 거닐어 보는 세연지 주변의 아름답게 빛나는 길

정원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길이 예쁘고 아름다웠습니다.


판석보 다리 건너에서 바라 본 세연정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정원에는 동백나무들이 많아 꽃들이 만개했을 때는 그 아름다움이 상당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보길도의 동백나무들은 얼굴이 작은 애기 동백들인 듯...

그래서 꽃이 피어도 그렇게 눈에 확 띄지는 않을 듯한데

우리가 갔을 때는 한차례 피었다 진 듯하고 또 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땅에 떨어져 마른 꽃들도 한 무더기 나무 가지 끝마다 물고 있는

꽃봉오리도 한 무더기...그 와중에 피어나고 있는 꽃들도 붉은 점처럼

군데군데 콕콕.....언제가 절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완도국제항으로부터 12km 되는 거리에 있는 보길도


 고산 윤선도, 그의 나이 51세 때인 조선 인조 15년(1637)에

왕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 하고 제주도로 향해 가던 중,

심한 태풍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가 수려한 산수에 매료되어,

이곳 동명을 부용동이라고 명명하고 머물 것을 결심했던 곳이 보길도이다.


10여 년을 머물면서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 생활을 즐겼으며,

그의 유명한 작품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 섬에는 은빛모래 혹은 자갈밭이 펼쳐진 해수욕장이 세 곳 있어,

여름피서지로도 인기가 있다. 그 중 섬 남쪽에 위치한 예송리 해수욕장은

모래없이 작은 자갈밭이 1.4km나 펼쳐져 있어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예송리 상록수림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아열대성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투명한 바다와 신비스런 조화를 이루며,

특히 보길도로 향하는 남해 뱃길에는 푸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 곳에는 또한 고산 윤선도 유적 외에도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도 있다.

 우암은 세자 책봉 문제로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83세의 노령으로

제주도로 귀양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보길도 백도리 끝 바닷가의

병풍처럼 생긴 바위에 탄식의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 바위를 "글씐바위"라고 한다.

 

그밖에도 예송리 일출과 보족산, 선창리 일몰, 부용리 동백림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고산 윤선도 선생께서 보길도에 18번이나 머무르셨다고 하며,

고려 때 최영장군이 탐라를 토벌하러 가다가 정박했던 곳이 보길도이다.


다음백과에서 가져온 글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는 세연정을 둘러 보고

근처에 있는 동천석실로 향했습니다.


동천석실도 세연정처럼 평지에 있는 곳인 줄 알고 별 생각없이 저 다리를 건넜더랬지요.


동천석실이 저 산 위 바위 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겨울가뭄이 심해 이 곳의 냇가 역시 바짝 말라 물이 없었습니다.



동천석실 가는 길


제주의 겨울숲에서도 느꼈지만

남녘의 숲은 역시 상록수림이 우거져 윗녘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겨울숲인데도 초록이 무성하여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초록의 숲



동천석실까지는 경사가 심해 비탈진 길을 10여분 올라가야 합니다.

땀이 삐질삐질.....^^




힘들었지만 그것도 잠깐 내려다보는 풍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감탄스러웠습니다. 힘들어도 꼭 올라 보시기를 권합니다.^^


바위 위에 석담, 석천, 석폭, 석대 및 희황교와 한칸 짜리 목조건물인 동천석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침실이 한칸 따로 있었습니다. 


이곳은 고산선생이 책 읽고 사색하며 신선처럼 소요하던 은자의 처소였다합니다.


동천석실에 앉아 내려다 본 모습


낙서재가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신 차바위


차바위의 움푹 패인 부분에 찻상을 놓아 움직이지 않게 하였다합니다.


차바위에 앉아 내려다 본 낙서재 지역 풍경


그런데 차바위 아래는 바로 절벽이라 아찔...아이고...

아무리 풍경도 좋고 차도 좋고 친구와의 담소도 좋지만

이런 절벽에서는...흐미야...^^


동천석실 앞에 있는 두개의 바위 용두암


용두는 도르레의 방언으로 두 바위 사이의 홈에 도르레 같은 시설을

설치하여 통속에 넣은 음식을 줄에 매달아 낙서재지역으로부터

손쉽게 날라다 먹었다고 전하니 차암 기발합니다.


그 옛날, 때마다 비탈길을 음식 담은 광주리 이고 오르내렸을 고초를 생각하여

만들어 낸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을과는 상당한 거리인데 그것을 만든 정성도 엄청나며 선생을 생각한

제자들이나 주민들의 맘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였습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이 거처하고 생을 마무리 하셨다는 낙서재 가는 길에 있는 곡수당은

내려오는 길에 들리기로 하고 낙서재로 먼저 갔습니다.


즐겁게 책을 읽는 곳 '낙서재'로 오르는 길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섬의 주봉인 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다.

 그 후 두 차례의 귀양을 가고 벼슬을 하여 서울로 가거나 해남의 금쇄동 등

다른 곳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 85세로 낙서재에서 삶을 마쳤다.


다음백과에서 가져 온 글 


낙서재 터를 고르는 중요한 지표였던 귀암 돌거북

이 돌거북과 낙서재 소은병이 일직선 상에 위치하며

 낙서재 복원의 중요한 근거자료였다고 합니다.

돌거북은 고산윤선도 선생이 달맞이를 하였던 바위로

이 바위에 누워 별을 보며 명상하기도 하였다합니다.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에 동천석실이 바로 보였습니다.

소은병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삼각형의 오목한 부분에 고인 물이

아래로 흘러 내리게 홈을 파 두었습니다.

이 곳에서 밧줄을 연결하고 통을 매달아 음식을 달랐지않았을까하는...^^



낙서재를 내려와 고산윤선도의 아들이 기거하였다는 곡수당으로 향했습니다

보길도를 둘러 보는 내내 돌들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처럼 돌담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화강암들이라 제주도와는 돌빛이 달랐습니다.


곡수당은 주위의 돌들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고 또한 돌을 쌓아 물길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어 그 연못에 물고기를 넣어 길렀다고 합니다.



저 산위에서부터 물길을 내어 맑은 물이 통통통

이 물이 모여 상연지로 다시 폭포 소리를 내며 흘러흘러 하연지로 연못을 이룹니다.


오른쪽이 곡수당이고 왼쪽이 윤선도선생의 초상이 치루어졌던 사당입니다.


곡수당 옆의 상연지에서 흘러 내린 물이 모이는 하연지

사면이 바다인 섬에서 왜 힘들게 연못을 만들고 물고기를 넣어서 길렀을까?

그것은 기상관측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물 위에서 노는지 물아래에서 노는지를 보고 기상을 예측하였다는...^^


부용동 유적은 고산선생의 기발한 착상과 절묘한 자연과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고 최대의 별서조경 유적이라고 하더만 발 길 닿는 곳마다 그 기발함이 

지금의 사람들이 보아도 감탄스러움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또 언제 와 볼 수 있을까 싶어

이 곳에서 1박을 하고 다시 한바퀴 더 둘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일출을 보러 나갈까도 싶었지만 곰탱이(나)는 이불속에서 꼬물꼬물 ㅎㅎ

이른 아침 바깥바람을 쐬고 온 부지런한 지기말로는 날이 흐려 일출은 꽝이었다고 합니다.

천만다행...ㅎㅎ


흐림 속, 봄이 오는 아침의 섬은 평온 그 자체

바람도 생각보다는 차지 않고 상큼하여 얇은 패딩으로 충분하였습니다.


공룡알 해변으로 가는 길 입구에서 만난 산세가 아름다웠습니다.

윤선도선생이 반할 만 한 풍경.....^^


거제몽돌해수욕장과 비슷하게 몽돌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공룡알 해변


거제몽돌해수욕장에는 몽돌만 와글와글하고 보길도의 또다른 예송리 갯돌해수욕장에는

몽돌보다 더 작은 갯돌이 망글망글 하다면 이 곳 공룡알 해변에는

그 두개의 돌무리와 함께 공룡알 같은 큰 동글이 돌들이 더해져 있어 독특하였습니다.


돌이 많은 곳 답게 열녀각 또한 돌로 지어져 있어 특이하였습니다.



송시열 글 씐 바위를 만나러 가는 길

바다로 이어지는 길 끝, 햇살과 함께 바다가 환하게 들어옵니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바다


그 바다를 바라보고 송시열 글씐바위가 있습니다.

작은 면적의 바탕에 먹으로 탁본을 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보길도

작지만 작지않은 섬

황칠나무와 돌들이 많으며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섬

귀양길에 풍랑을 만나 잠시 머물며 글을 남긴 송시열은

그곳이 아름다운 자연풍광 속에 유유자적 하였던

 윤선도의 앞마당이었다는 것을 알았을라나요^^



보길도와 윤선도의 인연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


<윤위, '보길도지' 가운데...>


늘 곧은 뜻을 꺾지 않고 직신의 정신을 지켜 연이은 상소 등으로

생애 중 16년이 넘는 귀양살이의 고초를 겪어야 했던 고산

그의 나이 51세 때인 1637년 2월, 인조대왕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백이(伯夷)처럼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고 기자(箕子)처럼 은둔하여

거문고를 타며, 관녕(管寧)처럼 옥탑에 앉아 절조를 지키는 것이 오직 나의 뜻이며,

육지에서 살아가는 것도 부끄럽다하여 마침내 제주를 향해 떠난다.


항해 도중 보길도의 수려한 봉을 멀리서 보고 그대로 배에서 내려

격자봉에 올라 참으로 물외가경이라 감탄하고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하여

이곳에 드높은 정신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4백년 전 고산과 보길도의 한줄기 맑은 인연이 오늘에

이어져 당신의 발걸음이 지금 이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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