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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이이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경린 2018. 9. 1. 19:43


퇴계와 율곡의 리(理)와 기(氣)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통해

조선 철학과 시대정신을 찾을 수 있는 책으로 이들의 사상을

계승해 조선 철학을 이끌어 나갔던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현시대는 서양철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동양철학은 왠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동양철학의 매력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의 주리론과 주기론을 나누어 외웠던 것이

일제 식민사관의 일부라는 것을 또한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리와 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선천적인 것인지 경험에 의한 후천적인 것인지

그게 당연 그렇지하고 여기던 것을 문제시하고 고민하고 논쟁하는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철학자들의 태도는 확실히 많은 생각을 이끌어 낸다. 


유가는 내세관보다는 현세에 중점을 두고 선악 행위를 구별하는 도덕체계를 정착시키려고 했다.

그래서 성리학의 최종 목표가 선비라면 성인이 되는 것이고, 일반인은 선악을

구별하고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더 행복감을 주거나

심리적 보상을 주는지를 알기 위해 선악 논쟁을 벌인 것이 사단칠정 논쟁이고

이황과 이이의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대부분 사단칠정에 관한 것이다.


책은 리와 기의 사단칠정에 대한 퇴계와 기대승의 논쟁으로 시작된다.

많이 들었던 내용이기에 쉬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세부적인 내용들을 짚어 보고 알아 갈 수 있어 좋았다.


사단은 맹자가 실천 도덕의 근간으로 도덕적인 본성을 알 수 있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며 칠정은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미움, 사랑, 욕망 7가지 감정을 말한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에 대해서 분리를 내세운다. 사단은 리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한 것으로 사단은 내마음 본연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고

칠정은 바깥의 것에 의해 즉 감각된 것에 의해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보았다. 

이렇듯 리와 기를 서로 분리 한 반면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칠정 가운데 사단이 포함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여 퇴계는 사단은 리가 발동해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해 리가 탄다는 말로 자신의 학설을 고치고 7~8년 간의 이어진 긴 논쟁은 끝나게 된다.

이황과 기대승의 나이차가 스물일곱인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 간의 예의에 어긋나지를

않았다고 하니 퇴계의 도량과 학자적인 면모가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사단은 순수하고 칠정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에 기인한다.

사단은 도덕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순선무악한 것이고, 칠정은 감정 일반을 가리키기

때문에 선한 경우도 있고 악한 경우도 있다. 사단은 완전한 것이고, 칠정은 불완전한 것이다.

사단과 칠정은 의미도 다르고 근원도 다르다고 주장한다.

본성에도 본래의 순수한 도덕적인 본성과 기질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질적인 본성이 있듯이 감정에도 사단과 칠정이 있다는 것이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을 서로 무관한 병행관계로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단과 칠정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사단이 칠정의 일부분인 포함관계라는 것이다.

현상 사물에는 리와 기가 함께 있는 것이지, 리 따로 기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대승의 문제점을 받아들여 이황은 자신의 학설을 수정한다.

"사단은 리가 발동해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동해 리가 탄다"

사단은 리와 기가 함께하지만 리가 주도권은 리에 있고, 칠정은 리와

기가 함께하지만 주도권은 기에 있다는 것이다.

기대승은 이에 대해 사단은 리가 발동한 것이지만, 칠정은 기가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는 수정안을 제기한다. 칠정 가운데 절도에 맞는 것은

사단과 마찬가지로 리가 발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7년 간의 논쟁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기대승이 이황의 주장을 인정하는 선에서 끝났다.



이 시기에 29세의 젊은 학자였던 이이는 지켜보는 입장이었다가 이황이 죽고 난 뒤

이황의 사단칠정에 대해 문제를 삼게되었다.

기대승도 이황이 죽고 2년 뒤 죽었기 때문에 이 논쟁에 서지는 못했다.

이이는 기대승의 의견을 옹호하면서 이황의 리와 기의 분리를 비판하였다. 

책의 내용을 좀 더 요약 해 보면

 


이황은 리의 자발성이 있다고 하고, 이이는 자발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리의 운동성 여부가 두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이황은 사단은 리의 발동, 칠정은 기의 발동이라고 주장한다.(리기호발설)

발동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사단은 리에서 나온다가 아니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황은 죽기 전에 리의 자발성을 인정한다.


이이에 따르면 리기가 함께 발동해야 되는데, 이황의 리발론은 리와 기 중 어느 것 하나가 먼저

발동하면 다른 하나는 나중에 뒤따르는 선후의 문제가 생긴다. 리와 기는 논리적으로 선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선후가 없다. 리와 기는 함께 작동한다.

이이가 보기에 이황은 운동을 리와 기 둘로 나눈다. 이이는 자연이나

인간이나 모두 운동은 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움직이는 것은 기이고 리는 그것에 올라탄다는 기발리승일도설의 하나의 길만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리의 무위성을 강조한다.

이이는 리에 적극적인 의지를 부여하지 않는다.

리는 어디까지나 도덕 원리나 이념인 것이다.


이이가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체 일반에서 사유한다면,

이황에게는 '나'가 중요했다. 결국 이이가 제3자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황은 그 자신의 삶을 통해 실천적으로 체득된 이론 체계를 견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황의 리동설은 강렬하게 '나'속에 리가 작동하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이이의 리무위설은 그런 조건에서는 누구나 도덕 감정이 나온다는 객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7년 간 서신을 통해 이어진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에서

그들 사후 이어진 퇴계와 율곡의 사상대결

리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통해 조선 찰학의 큰 틀을 확립한 이황과 이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 다른 해석을 하였으나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사람의 도리'를 다해야 함을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도리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인간이라면 마땅한 그것을 알고 실천해야 함

이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사람사는 동네의 마땅함인 것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퇴계와 율곡의 사상을 통해 어렵고 낯설기만 했던

조선시대 철학의 흐름을 조금은 알 수 있었던 책이었고

사뭇 플라톤의 심신이원론을 반박하여 형상과 질료의 결합으로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나기도 하였다.

무에서 유가 아니라 유에서 유가 새롭게 나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