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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약동하는 자유

#경린 2018. 8. 27. 17:49


이 책은 칸트의 저서 중에서 중요한 몇몇 구절들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든 초역본이다.

칸트의 책은 읽기가 어렵고 난해하다.

그 어려움을 들어 주고자 글이 쓰여진 연도별의 역순으로 배열되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글을 읽을 때는

"칸트 어렵다하더만 읽을만하네"싶었다.

뒤로 갈수록....음...어렵다...ㅋㅋ


칸트가 오후4시 산책을 나가면 그 동네 아줌마들이 밥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을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다. 어떻게 보면 고지식하다 할 수 있지만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손님을 초대하여 요리를

해 먹이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평생 한 마을에서만 살았지만

지리학을 강의하기도 하고 전 세계 사람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글을 쓰기도 하였다.


칸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의 인간론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부터 칸트철학은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교육 본질은 대학의 네이밍과 근사한 스펙 그리고 대기업 취업으로 변질되었다.

현대 교육은 더 이상 너 자신을 알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남을 알라고도 가르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하나, 단지 하나, 그것이 잘못된 앎이라도 그 하나만 가지고도 살아 간다.



'안다'라고 하는 것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앎'일까?

'안다'는 것이 유식이 아니고 하나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유식이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게 무지가 아니고 모르는 것을 '안다'라고 하는 것이 무지이다.

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모르는 것을 '안다'라고 하는 그 녀석이 제일 무섭다.^^


칸트는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험적 지식이라고 하였다.

인간이라면 경험하기 이전에 갖고 있는 지식을 초월한 선험적인 것이 있는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된 자아로 초월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신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공부를 할 수록 세상에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모르는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창조되고 있으니 배움은 끝이 없는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 때, 알고자 노력하며 질문할 때, 공감인식의 문이 열린다.

나의 탁월성을 닦을 수 있고 발휘할 수도 있다.

외부의 지식을 끌어와서 아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내부의 자아에서

꺼집어 내기 위해 배움(지식)은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성다움은 약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멍청한 사내들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여성들을 비웃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약점으로 보이는 바로 그 여성다움이

남성다움을 조정하고 그들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안다.(인간학)


모든 고통을 가장 철저하고도 손쉽게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행운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헤에 의해서만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으며, 결국 인간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인간학)


태초부터 모든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삶을 영위하는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이 배당되어 있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에 의해 잠잘 수 있는 시간의 양이 일정하게

주어져 있어서, 성인이 된 다음에도 너무 오래(하루의 3분의 1 이상) 잠을 자는 사람은,

앞으로 잠잘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보장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장수하리라는

보장도 받을 수 없다.(학부들간의 논쟁)


어린이들은 스스럼이 없어야 하고 마치 태양처럼 밝은 눈빛을 지녀야 한다.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선한 것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교사는 제자가 단순히 습관에 의해서 선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준칙에 입각해서

선하게 행동하도록 유의해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제자가 선한 것을 그저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행하도록 유의해 가르쳐야 한다.

행위의 모든 도덕적 가치는 선한 것에 대한 준칙 속에 성립하기 때문이다.(교육학)


사이좋은 부부의 얼굴 표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그들이 애당초 서로 닮았기 때문에 결혼 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원인을 잘못 짚은 것이다. 부부가 닮는 진정한 원인은, 부부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 속에서 오랫동안 기꺼이 그리고 빈번하게 마주보며 이야기하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되고, 그것이 고정되면 마침내

늘 그대로의 얼굴 표정을 간직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인간학)


자연의 아름다움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적어도 선한 도덕적

심성에 대한 자질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미와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


침묵은 늘 그 의도를 드러재고야 말기 때문에 조용하게 앉아 있는 것은 영리하지 못한 태도이다.

조용히 있고 싶은 부분을 제외한 모든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해야한다.(도덕철학 강의)

내가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의 마음을 더욱 새롭고 더욱 커다란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충만시켜 주는 것이 두가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

전자의 것은 내가 나의 외부의 감성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서 시작하여, 나와 관계를 맺는

세계와 천체계를 무한히 크게 확장시킨다. 이것은 또 그러한 세계와 천체계의 주기적인

운동의 시자과 지속을 무한한 시간 속으로 확장시킨다.

후자의 것은 나의 보이지 않는 자아, 즉 인격성에서 시작하여 진정으로 무한한 세계 속에

있는 나를 보여 주는데, 우리의 오성만이 이러한 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무수히 많은 세계들을 바라보면, 하나의 동물로서 잠시 동안 생명력을

(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부여받은 뒤에,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들을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행성에게 다시 반납해야 하는 나 자신의 가치가 소멸 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반해 후자는 지성적 존재로서의 나의 가치를 인격성에 의해

무한히 고양시킨다. 나의 인격성 속에 있는 도덕법칙은 동물성으로부터, 아니 더 나아가

모든 감성계의 지배로부터 벗아나 있는 삶을 내게 드러내 준다.(실천이성비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갈망했던 고흐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과 언제나 가슴 속에 반짝이는 도덕법칙을 가지고 살았던 칸트

책 표지 그림으로 선택 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칸트의 마음을 항상 경이로움으로

충만하게 해 주었던 밤하늘의 총총한 별이 너무 잘 어울린다.  


칸트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주려 그의 전반적인 생각을 다룬 책

어렵지 않게 그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