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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로티 미국의 철학적 유산, 프래그머티즘

#경린 2018. 10. 23. 19:42


흔히 실용주의라고 번역되는 프래그머티즘

저자 이유선 교수는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에서 리처드 로티에게 박사후과정을 사사받았으며

책을 통하여 우리가 흔히 실용주의철학이라고 번역하는 프래그머티즘에 대한 단편적인 선입견을 벗어나

지식을 문제해결의 도구로 삼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했던 프래그머티스트들의 삶과 철학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음 내용은 책의 내용을 주로 요약하고 제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였는데

사실 요약이라고 하기보다는 두고두고 읽어 보고 싶은  제 맘가는 부분을 옮겨 본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의 삶은 모두 하나의 시라고  한 로티의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순수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프래그머티스트들은 인간의 정신적인 본성을 중요한 탐구 과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충동이나 습관을 더 중요한 인간적인 요소로 여긴다.

왜냐하면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려면 실천을 통해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무엇을 변화시킬 수 없는지 잘 알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에서 이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연적인 세계다.

인간은 다른 자연의 생물 종과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기체일 뿐, 영혼을 가진 정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프래그머티즘의 계보를 보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세계 모습을 설명하려고 한 실재론적 절학자 퍼스,

반면에 제임스와 듀이는 실재론적인 입장이 훨씬 약하다고 할 수 있고,

로티에 이르면 우리의 지식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경험해서 그것에 대한 감각적인 효과를 알았을 때,

그 대상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다는 것이 바로 프래그머티즘의 격률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래그머티즘의 격률에서 퍼스는 우리가 어떤 말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이 과학적 탐구 과정과

 같은 것으로 모든 사람이 합의하는 과학적인 탐구를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제임스는

어떤 관념이든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경험적 결과를 가져다 준다면 그것은 참이라고 하였다.

제임스는 심지어 신과 같은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관념이 삶에 위안을 가져다준다면,

설사 그것이 사실의 문제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가치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티의 해결책은 종교와 과학이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굳이 어느 한쪽의 관점이 옳은지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겠느냐하는 것이다. 로티는 신을 믿는 것은 행복을 위해서이며,

과학적 탐구 활동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 서로 잘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제임스의 영향을 받은 존듀이는 사회참여에 가장 적극적인 철학자로 1919년에 일본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당시 듀이는 일본 정부가 주는 훈장을 일본이 비민주주의적인 국가라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쳐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듀이는 옛 소련을 직접 방문하고 인상기를 쓰기도 했는데,

이런 입장은 네오프래그머티스트인 로티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간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시키는 것이 바로 탐구의 목표이고 지성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며

듀이는 인간의 삶에 기여하지 않는 진리나 지식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듀이는 처움부터 실천과 분리된 이론적 탐구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론적인 참과 거짓은 오로지 실천적인 결과에 의해서만 가려질 수 있다는

듀이의 입장은 흔히 도구주의, 실험주의, 조작주의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사회란 여러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장소로,

듀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탐구의 논리를 적용해서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로티는 자신의 입장을 네오프래그머티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의 철학자로서 제임스와 듀이 등의 프래그머티즘을 계승한다고 밝히면서도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독일의 철학적 해석학 같은 분야를 자신의 논의 영역 안에 과감하게 수용했다.


로티의 '거울이미지'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의 세계 안에 진리가 있으며 우리는

그 진리를 비출 수 있는 일종의 거울 같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표상이란 거울에 사물을 비추는 것처럼 우리가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에게 이 거울은 이데아를 직관하는 이성이었고, 데카르트에게는 마음,

칸트에게는 오성.감성 형식, 그리고 현대의 언어분석철학자들에게느 언어였다.

이 개념들은 모두 객관 세계의 본질적인 질서를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이었다.


로티가 말하는 아이러니스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진리라고 말하고 있느냐의 여부보다

자기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을 중시한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참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러니스트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단어로 자기를 표현해보려 한다.  로티는 아이러니스트의 독창적인

자기 표현은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티는 자신의 사상에서 공적인 정의의 문제와 개인이 느끼는 것의 소중함을 모두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로티의 입장에서는 진리를 탐구하는 작업은 시인이 시를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로티는 진리를 탐구하는 이론적인 작업은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실천적인 일은 공적인 영역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로티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로티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계몽적인 매체로서 철학 논문보다는

만화, 드라마, 영화, 소설, 시 등이 훨씬 큰 역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티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사회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는 살 만한 사회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문화를 문학적인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니체가 볼 때 현실의 고통은 죽은 다음에 보상받는다고 설교하는 작자들은 모두 사기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는 존재하지도 않으므로 우리는 고통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는 생각 대신에 자신의 진리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로티는 니체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이 세계 자체를 한 편의

시라고 생각했다. 로티는 시인이야말로 진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이나 칸트가 말하는 영혼은 이 세상에서는 진리에 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저 세상으로

가서까지 진리를 발견해내고야 마는 주체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선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를 없애버림과 동시에, 그런 세계를 발견해내는 능력을 본질로서 가지고 있는 주체도 함께 없애버렸다.


정신분석학으로 유명한 프로이트는 주어진 나는 없으며 만들어가야 하는 나만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보여준 사상가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인간,

또는 예술적인 인간과 그런 재능이 없는 인간의 차이는 유년기의 우연적인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우열을 가려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로티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나는 우연성의 조각'이라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이미 주어져서 완성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이제 나는 그 우연한 조각들을

잘 짜 맞추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니체와 프로이트의 인간관이 잡초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위안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살아야 올바로 사는 것이라는 식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저마다 아무리 구차한 삶이라도 나름대로의 자태를 뽐낼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삶의 보편적인 기준은 없다. 잡초도 난초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


로티는 프로이트를 따라서 "각각의 삶이란 제 나름의 메타포(은유)로 맵시를 뽐내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곧 우리의 삶이 모두 하나의 시라고 하는 이야기다.


 



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인데 책을 읽는 동안 철학서라기 보다는 에세이집을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 해 주는 부분도 그렇고 절묘하게 그려지는 인용부분들도 그랬습니다.

어쩌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글들이 소설읽기와 영화보기, 걷기, 혼자서 멍하게 있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에

 아내와 저녁에 산책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주말에는 등산을 즐긴다는 작가 이유선 교수의 삶이

글에 녹아들어 그렇게 편하게 읽혀지고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우리의 삶이 모두 하나의 시라고 이야기 하는  로티 표현과 같이 글쓰기도 자신의

성격이나 내면의 어느 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봄의 연두빛 초록이 올라오는 아파트 정원을 바라보며 그 눈부심에 감탄을 하였던 것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어느새 정원의 초록이들은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바쁜일상에 나름대로의 자태를 뽐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로티의 말처럼

자신만의 메타포로 맵시를 뽐내보기에 가을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유선 교수님을 따라 저를 표현 해 보자면

보육교사, 유아교사, 초중등 수학교사, 초중고 상담교사, 입시학원 원장에 이어

현재 영.수 단과전문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이들과의 인연을 25년 이상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도 직위는 원장이지만 학원의 온갖 잡다한 일들은 모두 제 차지입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책읽기와 걷기를 좋아하고 요리, 바느질, 뜨개질, 그림 등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며,

10년 이상 키운 화초들뿐 만아니라 옷, 신발, 음식, 내방 내침대 기타 집안의 온갖가지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하는 남모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습관은 블로그라는 공간에 저를 옮겨 맵씨를 더하는데 한 몫을 하는 듯도 합니다.

집이라는 공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쓸고 닦고 정리정돈의 시간이 생기롭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이것은 집안의 온갖가지들과 이야기 나누는 습관과도 연결되는 듯합니다.^^

여행계를 2개 정도 하고 있고 주말에는 주로 여행을 합니다.

여행은 저의 시야를 넓혀 주고 같은 곳이라도 갈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새로움을 주는 것이 신기하며,

다양하게 다가오는 세상의 모습에 저를  다듬음이 설레임이라 신발끈을 고쳐 매고 매번 길을 나섭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벌고,

그 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여행의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영원히 남는 공유물이 되는 듯합니다.

여행하는 중에 함께 하면서 갖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평소에 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존재감과 유대감이 더 돈독해지기도 합니다.

여행은 또한 행복 치유기능이 놀라워서 치열한 사회생활에서의 탈출과 닫힌 공간으로 부터의 해방감으로,

 한 사람이 행복해지면 덩달아 행복바이러스가 전염되어 함께 한 이들 모두가 행복해 지니

비용 대비 행복감이 더 큰, 남는 장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뒤돌아보니 부모님과 함께 했던 여행이 두고두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늠름하고 함박꽃 같이 고았던 아버지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우리가족의 빛나는 순간은,

내가 찾아 보고 싶을 때 언제나 그자리에 있는 영원한 추억으로 삶이 고단할 때 내 어깨를 토닥여 줍니다.

이렇듯 여행의 추억은 살아가는 내내 힘이 되어 주는 비타민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의 나열한 모든 것들이 저에게 있어 로티가 말하는

 "각각의 삶이란 제 나름의 메타포(은유)로 맵시를 뽐내려는 시도" 가 아닌가 싶습니다.

향후에는 저의 경험과 배움을 살려 대학에서 교육이나 철학관련 강의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고

석.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하면서 하지 못하고 있는 그림과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걷고 있는 걸음이 향후 그것들을 위한 한걸음 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