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세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경린 2018. 11. 6. 09:52


아테네 학당(579.5 X 823.5) . 1509년 . 바티칸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벽화'나 '천지창조'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교황의 개인 도서실에 그린 대형 벽화이다.


아테네 학당의 원제는 '원인들에 대한 지식(Causarum Cognitil)'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을 상징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라파엘로는 그림에 고대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들을 그렸고 그들의 모델은 라파엘로가 살았던 시대의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고대 철학자들이 각각 누구인지 어디에도 기록 해 두지 않아 여러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어

복장이나 소지품, 행동 등을 통해서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을 유추 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먼저 아테네 학당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살았던 고대 석학들이 한 곳에 모여 토론을 하는 장면 뒤의 배경의 원근감이 감탄스럽다.

왼쪽의 대형 조각상은 음악과 조화의 신 아폴론이고, 오른쪽 조각상은 지혜의 신 아테나이다.



이 작품의 메인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붉은 망토에 <티마이오스> 즉 형이상학 책을 끼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인물이 플라톤이다.

진리만으로 이루어진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는 것으로 나타내었고

모델은...자세히 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초상이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플라톤의 모델로 삼은 것에서

라파엘로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그대로 전달된다. 

 

푸른 망토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을 의미하는 <에티카>를 들고 오른손을 펴 대지를 향하고 있다.

이데아의 세계가 하늘 어디엔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함께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자연과 현실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대지를 가리키는 손동작으로 대신하고 있다.

모델은 라파엘로가 가장 아꼈던 조수이자 건축가인 줄리아노 다 상갈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니 모델을 라파엘로 자신으로 하고 싶었을 듯한데

조수였던 사람으로 한 것을 보면 주위의 사람들을 많이 아끼고 사랑하였던 맘이 느껴진다. 



그림 상단 왼편 들창코에 앞머리가 벗겨진 모습으로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카키색 옷을 입은 이가 소크라테스이다.

투구를 쓰고 소크라테스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군인 복장을 한 사람을 소크라테스를 사랑한 알키비아데스 또는

알렉산더 대왕으로 추정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임을 감안하고

 얼굴이 아름답게 그려진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알키비아데스가 아닐까 싶다.



계단 아래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사색에 잠긴 이는 그리스 자연철학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헤라클레이토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 만물은 변화를 가장 본질적인 특징으로 한다는  "만물은 유전한다"라는 말로 유명하며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하였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음에도 어제와 같은

물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물의 본질 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진리로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그리스 많은 자연철학자들이 물이나 흙처럼 세계의 근워적인 물질을 찾는데 주목했다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 자체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대립된 성질을 갖는 요소들 사이의 투쟁을 통해 변화가 나타나고 조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왕"이라고 하였다.

진리나 조화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어떤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는 아주 상이한 철학적 태도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 만물의 변화를 불을 통해 얘기했는데 불은 에너지, 기(氣)와 같은 것이다.


미켈란젤로


헤라클레이토스의 모델은 미켈란젤로로 같은 시기에 작업 되고 있던 <시스티나 천장 벽화>를 본 후

감탄과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림의 완성 단계에 새로 그려 넣었다고 하며 대리석을 잘 다루었던 미켈란젤로를

나타내기 위해 턱을 괴고 있는 탁자를 대리석으로 하였다.

고독을 즐기고 난해하고 어려운 말을 던지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에서도 느껴지는 어둡고 괴팍한 성격의 미켈란젤로는 참 잘 어울리는 듯하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못생기게 그렸다며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계단 가운데 보라색 망토를 깔고 푸른 옷을 걸치듯 입고 비스듬히 누운이가

사람의 명예와 부귀를 천시하고, 종교, 사랑, 철학 등 모든 세속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견유학파(개같이 사는 지식인) 디오게네스이다.

그는 대낮에 의인을 찾는다며 등불을 들고 다닌 괴짜 철학자로 유명하다.

온갖 재물과 명예 같은 것들은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여 쾌락을 멀리하고 간소한 생활을 추구했다.

시체를 담는 항아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 온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그리스, 소아시아, 나아가 온 세상을 정복 한 다음에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알렉산드로스대왕은 "그렇게 하고 나면 아마도 좀 쉬면서 즐겨야 하겠지"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이상하군요. 왜 지금 당장 좀 쉬면서 즐기시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왕인 자신이 해줄 게 없느냐고 묻자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했다 한다.



무언가 책에 열심히 기록을 하고 있는 인물은 우주 만물이 수(數)로 되어 있다고 한 피타고라스이고

피타고라스 옆에 노란 망토를 입고 자기 노트를 가린채 어깨너머로 피타고라스의 이론을 살짝 엿보는 듯한

모습은 피타고라스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낙시만드로스로 추정한다.


피타고라스` 위 하얀 풍성한 옷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히파티아이다.


히파티아 (370? ~ 415.3)`

수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히파티아는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다.

히파티아는 철학학교의 교장이었으며 수학, 플라톤의 철학을 새롭게 정립한 네오플라토니즘 등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학자로서의 태도와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서 인기가 높았으며 그녀를 따라는 제자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들이 혼재하여 서로의 신을 내세우며 분쟁이 빈번했던 때로

 키릴(Cyrill)이라는 그리스도교 주교가 히파티아의 철학을 이단으로 규정하자 광분한 그리스도교도들은

히파티아를 이교(異敎)의 선포자라 하여 강제로 끌고갔으며  히파티아는 알몸으로 벗겨진채 참살당하였다.

이 사건 이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떠나게 되면서 학문의 중심지라는 명성을 잃게 되었고 

도시는 퇴보하기 시작했으며 문화적으로 낙후된 곳으로 전락 해 갔다.

 

라파엘로는 히파티아를 그림의 중앙에 넣어 그렸으나 교황청의 한 주교가 여성이며 이교적인 학자라는

이유로 삭제할 것을 요청하여 한쪽 아래의 위치에 숨기듯 그려 넣었다고 한다.


히파티아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아고라'로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왼쪽 아래의 에피쿠로스 

제논 



머리에 초록이 화관을 쓴 이는 쾌락주의의 창시자 에피쿠로스이고

초록모자를 쓴 이는 에피쿠로스와 함께 항상 언급이 되는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이다.

에피쿠로스는 최대한 많이 즐기고 최대한 덜 괴로워 하기 위해 욕구를 제한 할 줄 알아야한다고 하였다.

행복에 도달하는 것을 많이 선택하고 불만족과 불행의 운명에 처하는 것을 거부하며

자연스러우면서도 꼭 필요한 것으로 생명이나 신체 유지와 영혼의 안위를 위한 우정과 철학을

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는 욕구는 명예, 부, 권력을

자연스럽긴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욕구로 성욕, 미적욕구, 식욕을 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 속에서는 더 이상 내가 없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행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에피쿠로스 주의는 즐기는 기술로 행복의 기술이다.


에피쿠로스가 옹호한 절제된 쾌락까지 반대하는 스토아주의자는 도덕적인 행복 혹은 윤리속에서의

행복을 권장하여 선을 행하고 미덕에 따라 행동할 때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와는 달리 행복주의는 아니고 행복으로 이끌기는 하나 그것은 향락이 아닌 미덕으로 규정했다.

즉 에피쿠로스는 행복이 미덕을 이루는 반면 스토아는 미덕이 행복을 만듦이라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즐기는 기술이라면 스토아는 원하는 기술로 예를 들자면 물이 없다면 희망하지 않고 견디라는 것으로

자신의 뜻에 좌우되지 않는 것을 바라는 법을 잊게 되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자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기에 현자라고 보았다.




허리를 굽혀 컴퍼스를 돌리고 있는 인물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또는그리스 기하학을 완성한

유클리드로 추정한다. 컴퍼스는 기하학의 상징이기도 하니 나는 유클리드가 아닐까 싶다.

 모델은 이탈리아 건축가로 성베드로 성당을 설계한 브라만테라 한다.



유클리드 뒤에 등을 보이고 지구를 두 손으로 들고 서 있는 이는 페르시아의 종교 창시자 조로아스터이고

별이 반짝이는 천구를 한 손으로 받쳐 든 인물은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이다.



라파엘로 자화상


산치오 라파엘로 (1483~1520 )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서 자신의 모습을 몇군데 그려 넣고 있다. 26세 즈음에 이 그림을 그렸으므로

그림 속의 라파엘로는 미소년스럽다. 그 중 하나가 오른편 하단에 흰모자의

소도마(Sodoma, 동성애자)라는 별명을 가졌던 화가 조반니 안토니오 바치이 뒤에서 검은 모자를 쓰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이다.

1483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라파엘로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의 3대 화가 중 한명이라고 꼽힐 만큼 인정을 받아 젊은 나이에 교황청 전속 건축가로 임명 되어 활약을 하였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신이었으나 12년 동안 동거했던 여인(마르게리타 루티)이 있었다한다.

동거를 하면서 독신이었던 이유는 당시 메디치 가문(우리나라로 치면 삼성가? 그 이상?)의

추기경 딸과 결혼이 주선되었고 높으신 분들의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아테나 학당의 히파티아


히파티아 초상

라 포르나리나(제빵사 딸)-마르게리타 루티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그렸다고 추측을 받는 그림은 <라 포르나리나>인데 이 의미는 루티의 별칭이고

여인의 왼팔에는 'RAPHAEL URBINAS(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리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테나 학당에 그려 진 히파티아는 히파티아의 초상보다는 마르게리타 루티로 추정되는 라 포르나리나를 많이 닮았다.

라파엘로가 그림의 가운데 그려 넣고 싶어 했던 히파티아는 그가 사랑 한 여인을 모델로 한 것 같다.


포스팅을 위한 검색에서 등장인물들에 대해 상이한 의견들이 더러 있었는데

나의 소견으로 이해되는 인물들로 유추하였고, 해석에서는 박홍순의 <미술관 옆 인문학>과

여기저기 책을 보고 메모 해 둔 내용들을 참고하였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한자리에 초대한 걸작 '아테네 학당'

인물들이 추구하는 사상이나 특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중세철학으로 단절된 고대 철학과 문화의 부활을 외치며 철학, 문학, 종교, 정치 그리고 음악과 미술 등이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학문의 공존과 융합으로 무한한 창조성을 담고 있는 듯하다.


바티칸 미술관에 걸음 할 멋진 일이 생긴다면 그림 속으로 들어 가 등장인물들과 꼭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