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세계

고흐가 사랑한 노랑

#경린 2018. 12. 6. 16:21




경주의 왕릉 여행 가는 길에 만난 들녘은 연두에서 노랑으로 가는 그 즈음이었다. 여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가을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이었으나 들녘은 가을빛을 발하며 환하게 펼쳐져 도시의 아스팔트에 짓무른 눈을 시원하게 닦아 주었다. 차창 밖으로 아쉽게 보았던 물결을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농익은 황금빛으로 볼 기회가 생겼다. 함안 일붕사에 들렀다가 만난 그야말로 황금빛으로 넘실대는 가을 들녘은 그 어느 해의 가을 색보다 찬란한 눈부심이었고 진한 감탄을 안겨 주는 풍경이었다. 히야! 가을 들녘이 이토록 아름다웠단 말인가? 언제부터? 어찌 올해의 가을 들녘은 아리도록 가슴으로 들어와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는것일까? 무심히 보든 단발머리 꼬맹이가 어느 날 여자로 보일 때 "너 언제부터 이리 예뻤냐?"고 묻는 짝이다. 여태까지 가을들녘이 어리버리 어설렁 여름 끄트머리 한쪽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있다 이제야 환하게 짠하고 나타 난 것도 아닐 진데 나는 눈으로 만 보았지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던가 보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이 나이가 되고서야 그 풍경이 마음으로 다가 와 지니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가을을 보여주는 추수 직전의 가을 들녘 풍경은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이다. 농부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벼들은 그 정성만큼 점점 노랑으로 무르익어 따스한 가을 햇살의 손길에 보란 듯이 반짝이는 일렁임으로 황홀경의 춤을 춰 준다. 마음을 한없이 붙들었던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부드러운 바람이 휘돌아 지나가며 저마다 조금씩 다른 노란빛을 더욱 더 빛나게 한다. 그야말로 감탄스러운 저 황금빛을 고흐가 보았다면 얼마나 경이로워 하였을까.


밀밭 풍경, 1888. 6, 73X54, 파리 로댕 미술관


자연의 축복과 희망, 기쁨을 상징하는 노란색, 그 노랑을 사랑했던 반 고흐의 그림들에서는 그의 열정만큼 강렬한 노랑과 아늑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행복을 주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고뇌와 슬픔을 주는 다양한 노랑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생애는 가난과 슬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치려 부단히 노력하였고 특히 다양한 노란색을 사용하여 자신의 그림을 돋보이려 하였다. 친구였던 베르나르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일몰' 그림에 대한 설명글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노랑을 사용하였는지 엿볼 수 있다.



일몰: 아를 부근의 밀밭, 1888. 6, 정사각형 30호, 빈터투어 미술관


해가 지는 것처럼 보이나? 달이 뜨는 것처럼 보이나? 여하튼 여름 태양이네. 마을은 보랏빛이고, 태양은 노란색, 하늘은 청록색이네. 밀밭은 오래된 황금빛, 구릿빛, 녹색을 띠는 황금빛, 혹은 붉은 황금빛, 노란 황금빛, 노란 청동빛, 적록색 등 모든 색을 담고 있네.’

    

아를의 빈센트의 집(노란집), 1888. 9, 72X91.5, 반고흐 미술관

아를의 빈센트 침실, 1888, 10, 72X90, 반고흐 미술관


화병의 해바라기 14송이, 1888. 8. 내셔널 갤러리


고흐의 노란집’, ‘빈센트의 침실은 아늑하고 행복한 삶을 상징하는 노란색이다. 고흐는 고갱이 아를로 온다는 소식에 노란집을 빌리고, 고갱을 기다리며 노란 침실을 꾸미고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 집을 꾸몄다. 노란집에서 고갱과 함께 한 2개월의 생활은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고, 새로운 자극과 영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그림에 대해 열렬히 토론하기도 하였다. 고갱은 부지런하여 청소와 요리를 도맡아 하였고 고흐를 규칙적인 생활로 이끌어 주어 만족하며 안락하고 행복하였다. 고흐는 그 행복을 노란색으로 그려 내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설레임이 그대로 묻어 난다.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만 말이다. 네 가게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걸 너도 알겠지. 나는 그곳 창문에 커다란 해바라기를 늘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은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배경도 전경도 모두 노란색으로 칠해진 정물화를 아주 좋아한다.'



붉은 포도밭, 75X93, 1888. 11, 모스크바 푸스킨 박물관



온통 붉은 자주색과 노란색으로 그린 붉은 포도밭은 고갱과 함께 지냈던 시기에 그린 그림인데, 고흐가 살아생전에 판매하였던 유일한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는 그림으로 고흐에게는 아주 큰 의미를 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산 이는 고흐의 친구인 외젠 보쉬의 누나이자 벨기에의 화가인 안나보쉬였다. 그녀는 구입 후 이 그림을 매일 보다가 너무 강렬한 아름다움에 본인의 미술 관념이 바뀔 것이 염려되어 1906년 러시아인에게 판매를 하였다. 그 뒤 1948년 스탈린에 의해 푸시킨 미술관에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빨갛게 익은 포도를 따는 사람들은 고흐만의 노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역동적인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해뜰 무렵 밀밭에서 수확하는 사람, 1889. 9,  73X92, 반 고흐 미술관


생폴 병원 뒤쪽의 수확하는 사람이 있는 밀밭, 1889. 9, 59.5X72.5, 에센. 폴크방 미술관


그러나 고흐의 행복했던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기질이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의 갈등이 충돌하며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고갱은 떠나 버렸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잘랐고 심하게 병을 앓게 되었다. 아를의 생 레미 요양원을 거쳐 오베르에 머물며 신경쇠약과 환각 증세의 괴로움 속에서도 엄청 난 양의 그림을 그려 내었다. 고흐 자신만의 화풍이 열매 맺으며 완성 된 시기이기도 하다. ‘해뜰 무렵 밀밭에서 수확하는 사람에서는 넓게 펼쳐진 평원에 황금색으로 물든 밀밭이 떠 오르는 태양의 축복아래 빛나고 있다. 씨를 뿌리고 정성들인 그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풍요로운 추수의 장면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동경한 고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테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는 죽음의 이미지가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수확하느라 뙤악볕에서 온 힘을 다해 일하고 있는 흐릿한 인물에서 나는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건 그가 베어 들이는 밀이 바로 인류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므로 전에 그렸던 <씨뿌리는 사람>과는 반대되는 그림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죽음 속에 슬픔은 없다. 태양이 모든 것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환한 대낮에 발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수확하는 사람>이 끝났다. 이 그림은 네가 집에 보관할 그림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 막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이다. 보라색 선으로 그려진 언덕 외에는 모두 창백한 노란색이거나 황금빛을 띤 노란색이다. 병실 철창을 통해 내다 본 풍경이 그렇다는 게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 7, 50.5X103, 반 고흐 미술관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년 고흐가 동생 테오를 따라서 프랑스 북부 오베르에 이주하여 살면서 그린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고흐의 유작으로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그가 권총 자살을 한 18907월에 그렸다는 점 외에는 확실한 것은 아니다광활하게 펼쳐진 황금빛 밀밭은 거칠고 야만적인 바람에 격렬히 몸을 뒤틀고 있다. 노란색은 강렬함을 넘어 억세고 난폭 해 보이기까지 하여 절망감 가운데서도 잠재울 수 없었던 그의 불타는 창작욕을 발하고 있다. 그 위를 불길하게 날고 있는 검은 까마귀 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 검푸른 하늘은 폭풍이 오기 전 암울한 느낌으로 요동치고 있다. 극도의 불안감과 외로움,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 테오에 대한 미안함에서 오는 상실감이 극에 달한 고흐는 727일 그가 그린 이 역동하는 황금빛 밀밭에서 복부에 총을 쏘고 이틀간 고통 속을 헤매다 눈을 감는다. 그가 사랑한 노란 황금빛이 펼쳐진 밀밭 사이 난 길을 따라 검은 울음을 토해 내며 안식의 길로 떠나갔다. 고흐의 열정이 담긴 황금빛 밀밭이 가슴을 후벼 파는 아림으로 다가 오는 듯하다.



사이프러스나무가 보이는 밀밭, 1889. 6, 72.5X91.5, 런던 내셔널 갤러리


'아주 노랗고 환한 밀밭 그림을 그렸는데, 아마 나의 그림 중 가장 밝은 작품이지 싶다.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고흐가 시간이 흐를수록 유독 진한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고흐가 매일 마셨다는 압생트라는 술(튜존이라는 물질이 환각작용을 일으켜 시신경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한다) 때문인지, 일본의 화려한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간질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림 속에 색의 힘을 불어 넣어 그림을 더 강렬하고 맵시 있게 표현하고자 하였던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다른 모든 것을 죽여 버린다는 그 그림 속 색의 힘을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포르티에 씨는 자신이 소유한 세잔의 그림을 따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캔버스 옆에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의 색채를 죽여 버린다고 말했지, 세잔의 그림은 황금색 배경에서 훌륭해 보이는데, 그것은 그림의 색조가 뛰어나고 모든 단계의 색이 아주 짙게 칠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린 그림은 작업실 바닥의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해도 색감이 죽지 않는다. 그림을 벽돌처럼 짙은 빨간색 바닥에 두고 본 적이 있는데, 그림의 색이 바래거나 창백하게 보이지 않는다.’


고흐의 편지글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가져 옴



몽마주르가 보이는 크로 평원의 추수, 1888. 6, 73X92, 반 고흐 미술관


고흐는 많은 밀밭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농산물 중에서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밀이고, 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 보면 쌀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가을 들녘에는 어딜 가나 누렇게 익은 벼이삭의 황금빛 물결이 넘실대듯 그가 생을 마감할 즈음 머물렀던 아를의 가을 밀밭도 순수한 황금빛으로 물들어 눈부시도록 풍요로운 가을을 선사했을 것이다. 벼는 밀과 보리에 비해 색이 훨씬 더 밝고 부드러운 황금빛이다. 그야말로 노랗게 빛나는 황금빛이라 바람의 쓰다듬는 손짓에서도 금가루가 흩날리는 듯하다. 우리의 가을 들녘을 고흐가 보았다면 홀딱 반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리도록 아름답게 다가 왔던 가을들녘에서 나는 고흐의 그림을 보았던가 보다. 고흐가 우리의 가을 들녘을 보았다면 어떤 황금빛으로 그려 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