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금정산 고당봉과 금샘 그리고 원효암

#경린 2018. 11. 3. 21:01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외할머니 계셨던 범어사 부속 암자인 원효암을 찾아갔습니다.

원효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범어사를 지나가야합니다. 주차를 하고 범어사는 곁눈질만 하고 지나쳤습니다.

범어사는 간간히 들리는 절집인데 이렇게 씽~ 지나쳐 버리기는 처음이라 아쉬움에 제가 좋아하는 일주문 앞에서 찰칵~^^


건축가 안영배의 '흐름과 더함의 공간'에서

우리나라 절집의 일주문 중 걸작품으로 손꼽힌다고 소개 된 범어사의 일주문인 조계문은

4개의 돌기둥에 다시 나무 기둥을 올리고 섯가래와 지붕을 올린 형태인데

일직선으로 선 4개의 기둥이 어떻게 저리 큰 삿갓같은 지붕을 받치고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 지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언듯 보면 아래 돌기둥이 똑같아 보이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면 거칠게 대충 다듬은 듯한 돌들이 하나하나 다 달라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고, 가을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면서 발하는 단청의 색도 아름답고

주위 호위하고 선 나무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는 음영의 조화도 풍경으로 어우러져 들어옴이 인상적입니다.

조계문, 천왕문,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범어사의 이 길을 참 좋아하는데 이번 걸음은 그냥 통과~~


범어사의 진입공간은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공간 중의 하나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건축가 안영배 <흐름과 더함의 공간> 중에서


일주문 왼쪽 옆으로 가면 원효암으로 가는 돌 너덜지대가 나타나며 '원효암 가는 길' 이정표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범어사 올 때마다 저 이정표를 보면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음이라 늘 뒤돌아 서기만 하였지요.

저 돌 너덜이 흙속으로 거칠게 울퉁불퉁 오름의 경사로 이어지는 길을 한참이나 올라야 하는 길이라.........



원효암 가기 전에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과 일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금샘을 먼저 가기로 하였습니다.

돌 너덜지대가 정상까지 이어지는 듯 계속 함께 하는 길입니다.


해가 구름에 가렸다 보였다 하면서 숨박꼭질하는 가을날의 오전 햇살이

단풍색을 올리고 있는 나뭇잎 사이를 비켜 들어 와 돌위로 만들어 내는 반짝이는 일렁임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라 처음에는 그것에 홀려 제가 가는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 지

얼마나 가야 하는 지 그저 헤벌레 좋기만 하였습니다.^^


부산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길로 많은 이들이 산책하며 오르는 산책로 정도라고 하길래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요즘 체력이 좀 바닥이긴 하지만 이 정도 쯤이야....ㅎㅎ 싶었지요.



아이고 무시라이~~~~~~

저 돌 너덜의 경사가 보이시는 지요?

길이 잘 정비가 되어 있었지만 절대 산책로는 아니지 않는감요? ㅠ.ㅠ



아웅~~~ 힘들어~~~~

부실한 체력에 더 부실한 무릎이라 가다 쉬다 가다 또 쉬다...

"그런데 금정산이 몇미터래요?"

"한......800미터 좀 넘을라나..?"

"머시라고요? 그라모 마산 무학산 보다도 더 높은 것이잖이여?"

하이고야.............

정상 아래 몇미터만 급경사이고 오르는 길은 경사도 별로 없는 산책로라 해 놓고는 800m 라니.....ㅠ.ㅠ

그대에게는 산책로일지 모르나 저에게 800m는 고산이라고요~~~~

 


그래도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이 물들어 가는 가을단풍 사이로 고당봉 정상이 보이니 힘듦도 살짝 내려 앉아 지고...ㅎㅎ



드디어 북문 도착

탁 트인 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우찌나 많이 부는 지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싸악 식혀주었습니다.



힘들다고 여기까지 와서 정상을 안 오를수는 없지요.

북문을 지나 약수도 마시고 도란도란 끊임 없이 얘기를 나누며 정상까지 고고





고당봉 가기 전에 살짝 옆길로 가서 금샘으로 갔습니다.

어딜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바위를 받치고 있는 나뭇가지들의 모습

친정옴마 허리가 좋지 않아 고생하시는지라 예사로 보이지 않아 저도 나뭇가지 하나 주워

바위 아래에 끼웠습니다. 울옴마가 꼿꼿하게 허리피고 사셨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서요.^^


금샘을 보기 위해서는 바위를 타야합니다.

영차 영차



신비로운 샘 '금샘'

물이 쬐꼼 밖에 없어 신비로움이 반감되었지만 그래도 금샘과 함께 펼쳐지는 풍경들이 넘 아름다워 감탄스러웠습니다.



몇 년 전 지기가 담아 온 물이 가득 하였던 금샘 사진


옛날 황금색 물고기가 헤엄치고 놀았으며 날이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설화가 있는 바위로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라고 하는데

세상에나 저 금샘 바위 위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는 간 큰(?) 여인도 있었습니다.

 널찍한 바위에 올라서도 오금이 저려 발발 떨며 사진을 찍는 저에 비해 참 용감한 여인이었지만

온 시민이 신성시 여기는 문화재를 등산화로 밟고 올라가 두 손을 하늘 높이 올리며 환호의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인지

참으로 별사람이 다 있음이었습니다. 지켜 보는 사람들이 위험하니 어서 내려오라고 말 하였지만

당사자는 겁도 없이 웃으며 꿋꿋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라니......쩝




고당봉(801.5m)은 바위산 꼭대기였는데 정상 부근을 나무데크 계단으로 해 놓아 안전하게 오르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바람은 엄청 많이 불었지만 사방으로 부산 시내가  발아래 다 보이는 경치는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800m의 산이라고 했더라면 그렇게 겁없이 나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정도 높이의 산을 얼마만에 올라보는 것인지...완전 까마득.......

모르고 올랐지만 그래서 겁없이 걷고 또 걸었지만 정상에서 느끼는 그 기분은 모든게 보상이 되었습니다.^^



오르는 것 보다 무릎에 오는 충격이 더 큰 하산길이 더 문제

길이 잘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경사가 있는 길이라........



내려오다 원효암으로 가기 위해 살짝 옆길로 들었습니다.

고당봉으로 가는 길과는 달리 울퉁불퉁 길인 지 아닌 지 모를정도로 이어지는 길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하는 길을 한참 짚어가며 갔습니다.

힘들었지만 아니갈 수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 따라 와 한 달 정도 머물렀던 암자

오랜 기억 속 한자리에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곳

너무 많이 변해서 못 알아 볼 것이라고 했던 친정아버지 말씀이 계셨지만

그래도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친정어머니께서 척추협착증 수술을 앞 두고 있는 즈음이라

이번 걸음에 꼭 다녀 와 봐야 겠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도착!

지금의 후문을 그 옛날에는 정문으로 사용하였다고 하여 기억을 더듬으며 후문으로 들어섰습니다.



깨끗하게 비질을 정성 스러이 해 둔 산길이 꽤나 넓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넓은 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낯설었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후문으로 들어서며 먼저 접하게 된 건물 무량수각은 더더 낯설었는데 근래에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40년 전에는 당연히 없었던 건물들입니다. 조용한 걸음으로 들어가 관음보살상에 엄마의 건강을 기원하였습니다.

외할머니도 안계시고 그 옛날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암자이지만 맘 속 그곳에 외할머니께서 함께 하심이라

엄마의 이번 중요한 수술을 할머니께 전하고 지켜 주시길 바라는 맘이 여기까지 오게 한 것입니다.


친정엄마의 척추협착증은 근 30년이 넘은 병입니다.

검진 받은 병원 의사가 자기 부모님 같으면 수술을 권하지 않는 다고 하였고,

주위에서는 척추수술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하여 30년이 넘게 온갖 한약, 침, 주사, 약으로 버티기만 하셨습니다.

30년을 넘게 그렇게 보냈다는 것이 예사일은 아닙니다. 들어간 돈도 어마무시하지만 엄마의 고통도...

세월이 갈수록 증세가 더더 심해져 지금은 걷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서 있는 것 조차도 힘들어 하십니다.

그런데 요즘 티브를 보니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들께서도 수술을 하셔 잘 걸어 다니시고 건강하심이라

제가 몇 달을 설득을 하였습니다.

걷는 것만 불편하지 가만히 있으면 허리는 전혀 통증도 없는데 괜히 건드려 통증이 생기면 어떡하느냐

척추수술에 부정적이기만 하신 아버지도 설득을 해야 했습니다.

조금 걸으면 다리 통증으로 끙끙 앓으시는데...걷지를 못하시는데....

세월이 변했고 의술이 좋아졌지 않았습니까.....

더 늦기 전에....

하루를 살아도 건강히 두 다리로 가고 싶은데 다 다니시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 하지 않으시겠다 고집만 부리시던 옴마가 살짝 반응을 보이고 아버지께서 한번 해 보자 나서시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수술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낯설기만 한 건물들 옆의 위쪽 안으로 예전에 사용하였다는 법당이 있었습니다.

법당 건물의 색이 그 예전과는 달랐지만 건물의 크기나 위치 마당 등이 옛 기억을 소환 해 주었습니다.

아....그래 이곳이야..맞아...

그때는 꽤나 너른 마당이었고 스님이 아침마다 곱게 비질을 하였던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운치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법당을 마당 아래에 새로 지으면서 옛 건물은 사용하지 않는 듯  출입을 금하고 있어 멀리서만 서서 보았습니다.


법당 왼편으로 할머니와 제가 한달 간 지냈던 작은 요사채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허물고 새로 크게 지은 요사채가 있어 전혀 낯설음이었지만

요사채 뒤로 이어지는 길과 바위가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바위 아래에 할머니의 작은 텃밭은 사라지고 지금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심은 더덕향이 알싸하게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건물 뒤로 병풍처럼 펼쳐지는 바위들은 그옛날부터 있을 것이지만

제 기억 속에는 뚜렷이 남아 있지 않음인 것을 보면 크게 품지를 않은 듯하였습니다.




바위뿐만 아니고 탑들도 일주문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40년 전의 기억이고 일주문은 그 이후에 만들어 진 것이며 탑들도 어디어디서 가지고 왔다하니 그럴 것도 같습니다.

저 보다 두살 위인 오빠가 왔더라면 좀 기억이 났을라나......

하지만 아버지께서 천지가 개벽한 듯 바뀌었다고 하니 제가 기억 해 내지 못함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건물을 새로이 더 짓는다고 산을 깎아 넓히면서 아담했던 마당도 소담 스러웠던 암자도 다 사라지고

제가 개구리와 친구하며 놀았던 작은 계곡은 더 작아져 겨우 물만 졸졸 흐를 정도였습니다.

크게만 느껴 졌던 감나무도 작은 나무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작아 진 것인지 그 나무가 아닌 것인지.....


원효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바위에 새겨진 미륵부처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지라

길의 낙엽을 쓸고 계시는 처사님께 여쭈어보니 과연 근처에 미륵부처님이 계시다며

가는 길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름방학을 이용 해 왔던 사촌언니를 따라 한번 걸음하여 보았던 마애미륵보살상은

신기하였음인지 어렴풋이지만 제 뇌리에 꽤나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야했던 바위문이며 미륵보살상 앞으로 자박하게 흐르던 물이며...

물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물길을 막아 샘을 만들어 둔 것이 보였습니다.

기억이 맞나 확신이 없었는데 역시....맞았습니다.^^



여의주를 문 석룡이 지키고 있는 마애미륵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뒤를 이어 후세에 나타나실 미륵부처님의 마애불 모습이라고 합니다.


원효암도 그렇고 마애미륵부처님도 그렇게 범어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한적...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듯하였습니다.



마애 미륵부처님을 뵙고 원효암 일주문을 지나 산을 내려왔습니다.

일주문으로 가는 숲길도 저에게는 낯설었습니다. 그 옛날에도 저 길이 있었던 것인지...

그때의 기억에는 없었지만 지금의 기억에 다시 새겨 넣었습니다.



원효암에서 조금만 가면 부산시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이는 의상대가 나옵니다.

의상대사가 앉아 정진하셨다는 바위에 앉아 심호흡하며 지나가는 바람을 잡아보는

기분이 아주 그만이었습니다.^^



의상대에서 내려와 다시 범어사로 가는 길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길이 길인 것인지 아닌 것인지 울퉁불퉁 바위품은 길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금정산 고당봉 할매신도 뵙고

원효암에서 외할머니 발자취도 따라 밟아 보고

관음보살님도 뵙고

마애미륵부처님도 뵙고


엄청 벅찬 코스였지만 맘은 완전 뿌듯하였습니다.



다리가 너무너무 아팠지만 범어사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는 잊지않았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은 팔관회 준비로 부산하였고




성보박물관 앞에서는 팔관회 전의 공연으로 떠들썩하였습니다.

마침 외줄타기 공연을 하고 있어 앞자리에 앉아 보았습니다.

외줄을 타시며 온갖 연기를 하시는 분을 보니 재주가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다리가 차암 아프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내다리가 내다리가 아닌 것 같은 다리를 토닥였습니다.^^



범어사 오면 꼭 거닐어 보는 아름다운 돌담길...^^

원효암쪽으로 가는 돌담길도 너무 아름답고 옛스러운 길이었는데 지금은 공사중이었습니다.

돌담을 완전히 다 허물어 버리고 그 이뿐 벚나무 노목도 다 베어 버렸더랬습니다. ㅠ.ㅠ

애틋한 것들이 자꾸 바뀌어 가는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