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경주 왕릉 여행 . 무열왕릉, 괘릉

#경린 2018. 11. 11. 20:12



'경주'하면 떠 오르는 장면이나 대표하는 것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저는

시내 어딜가나 쉬이 볼 수 있는 왕릉이 먼저 떠오릅니다.

누구의 왕릉인지는 모르지만 경주 어느 지점에 서 있어도 보이는 것들, 신라왕릉

왕릉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다 둘러보기에는 무리이고 경주 걸음할 때마다 왕릉을 한 두군데 둘러보고 옵니다. 

지난번 걸음에는 태종 무열왕릉과 쾌릉을 보고 왔습니다.

두 곳을 포스팅하면서 혹여 경주 걸음하시면 참고하시기 좋으라고

그 동안 다녀 보았던 능들을 함께 간추려 보았습니다.^^


무열왕릉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태종무열왕릉비를 품은 누각입니다.


태종무열왕릉비




현재는 비의 몸돌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만 남아있습니다.

원래의 모습이라면 용을 새긴 머릿돌과 거북모양 받침돌 사이에 무덤 주인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진 길죽한 몸돌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 중간이 없는 것입니다.

비문은 명필가로 유명했던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이고

이 비석 덕분에 능의 주인이 무열왕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릉


무열왕의 이름은 김춘추

왕위에 오르기 전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고 내정개혁을 주도하여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으며 왕권을 강화하였다.

654년 진골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당과 연합(나당연합)하여 660년 백제를 아울렀으나

삼국통일은 완수하지 못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신라 왕 중에서는 유일하게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무열왕릉 안내문에서 가져온 글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무덤에 비해 봉분 장식이 소박한 편이고

무덤 주위에는 자연석으로 둘레돌이 박혀 있었는데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습니다.




무열왕릉이 위치한 선도산 주변에는 고분이 많다고 합니다.

길건너 보이는 동쪽에 위치한 김인문과 김양의 무덤이 있고

태종무열왕릉 뒤 쪽으로도  4개의 태종가의 가족묘역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무열왕의 대를 이어 왕위를 이었던 문무왕(김범민)의 무덤은 동해안에 있지만

선도산에는 뒷쪽 산허리에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 있고

서면 애공사지의 서쪽에는 법릉왕릉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경주를 찾게 되면 둘러 봐야겠습니다.^^


태종가의 가족능


죽 늘어 선 능을 따라 걸으며 보는 풍경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겠지요.^^






무열왕릉과 태종가의 가족 묘역은 대릉원 보다는 작은 규모였으나 자박자박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았습니다.

무열왕릉에서 대릉원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닙니다.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경주 신라왕들의 대표 왕릉들 둘러 보시지요.^^



http://blog.daum.net/deersunny/2824  대릉원 . 천마총

황남대총 . 미추왕릉


아름다운 공원처럼 기분좋게 나들이 할 수 있었던 대릉원




http://blog.daum.net/deersunny/2031  경애왕릉 


삼릉


언제가도 아름다운 최고의 솔숲 경애왕릉과 삼릉



진평왕릉 http://blog.daum.net/deersunny/2033



선덕여왕릉


신라의 분위기 진평왕릉

소나무 오솔길 따라 찾아가는 도리천, 선덕여왕릉


정강왕릉 http://blog.daum.net/deersunny/2028

헌강왕릉


천 년의 도시, 천 년의 솔 숲길

세월과 자연이 만들어낸 소나무뿌리의 산길, 솔내음, 숲내음
참으로 아름다운 길의 끝이 환하질 즈음에 만나는




경주는 문화유산도 대단함이지만 자연환경도 좋아 시내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멋진 풍경들이 이어져 좋습니다.

임금님들의 능 주위로는 용트림하는 소나무들이 빼곡히 호위하고 있고

찾아 가는 길 역시 소나무길들이 이어져 상쾌함 그 자체입니다.



경주시내에서 울산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괘릉으로 가는 길도 소나무길이 안내를 합니다.



펼쳐지는 들녘 풍경도 아름다움 그 자체라 길손의 발걸음을 절로 멈춰 세웁니다.

황금빛 들녘이 펼쳐질 즈음의 우리나라는 어딜가도 그 빛에 아니 반할 수가 없는 듯합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감탄스러움이지요.^^



괘릉은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능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성왕의 능은 동곡사에 있으며 동곡사는 당시의 숭복사이다"라고 했다.

현재의 괘릉 부근에는 숭복사터가 있으므로 괘릉을 원성왕릉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


원성왕릉의 무덤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둘레돌에 배치된 12지신상과 같은 세부적인 수법은 신라의 독창적인 것이다.

괘릉의 12지신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는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또한 각종 석물에서 보여지는 뛰어난 조각수법은 신라인의 예술적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다음백과에서 가져 와 재구성





통일신라시대의 왕릉으로 가장 잘 갖추어진 형식으로 평가되는 괘릉은 능 입구에 세워진 석상으로도 유명하다.

봉분에서 남쪽으로 약 80m 정도 떨어져서 길 양쪽에 북쪽으로부터

돌사자 2쌍, 각기 1쌍씩의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화표석 1쌍을 차례로 배치했다.

통일신라시대 석조물로는 그 조각수법으로 보아 극히 우수한 것으로 손꼽히며,

특히 강한 인상을 주는 무인상은 얼굴생김이나 표정, 수염 등으로 보아 동양인이라기보다는

서역인의 모습을 한 것으로 판단되어 당시 신라인들의 국제적인 교역관계를 생각케 하는 데서 주목을 끈다.


다음백과에서 가져 온 글



통일신라시대 능 중 가장 잘 갖추어졌고 신라인의 뛰어난 조각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괘릉






12지신상은 그 오랜 세월이 무색 할 정도로 선명하여 어떤 동물인지 쉬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능 둘레 기둥의 윗 부분도 그냥 뭉실한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 처럼 조각을 한 꼼꼼함이 돋보였습니다.



능에 서서 입구 쪽을 바라 본 들녘의 시원스러운  펼쳐짐도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마지막 소개 할 능은 흥덕왕릉입니다.

경주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있는 왕릉으로 포항쪽에 더 가까운 곳입니다.

 저는 흥덕왕릉이 애틋하면서도 솔숲이 멋들어진 곳으로 기억이 됩니다.


http://blog.daum.net/deersunny/1997  흥덕왕릉


흥덕왕릉은 태종무열왕릉비와 같이 흥덕왕릉비가 있어 확실하게 능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능입니다.

왕의 요청에 다라 왕비와 합장이 된 합장능이기도 하구요.

능 주위를 둘러 싼 도래솔의 건강한 늠름함과 싱그러움이 특히 돋보이는 능이었고

햇살과 솔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그늘이 멋들어진 곳이었습니다.



사실 능만을 찾아 가는 코스는 단조로울 수 있습니다.

확실히 다름이지만 비슷비슷할 수 있거든요.^^

 둘러봄이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으므로 경주 걸음하실 때

목적지의 부근에 있는 능들을 둘러 보심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