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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영감 / 장 그르니에

#경린 2018. 12. 8. 21:37

 


시적 감수성과 철학자의 통찰로 그려 낸 장 그르니에 대표 에세이 <지중해 영감>은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시적이고 명상적인 장 그르니에 특유의 감성과 사유가 탁월한 작품이라고 여기저기 소개 되어 있기도 하였고

책을 번역한 이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른 책들과는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단순한 논리적 이해를 넘어서 어떤 형이상적 시의 분위를 통합적으로 경험해낼 수 있는 자질을 요구한다.

천천히 읽기, 내면적 성찰을 동반하는 창조적 읽기가 도달한 내면적 풍경의

저 끝에서 저만큼 걸어가는 그의 발소리가 나직하게 들린다.

어둠이 오히려 빛이 되는 그 골목 저만큼에.......


그의 발소리는 시작 되는 서문에서부터 또박또박 선명하게 울렸습니다.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풍경들이 존재한다. 

플로베르는 그 기쁨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끔 삶을 초월하는 어떤 영혼의 상태를 엿본 적이 있다. 그 상태에서 보면 영광이란

아무것도 아닐 것 같고, 행복 그 자체도 거기서는 부질없을 것 같다."


지중해는 그런 영혼의 상태를 영감처럼 불어넣어줄 수 있다.


삶을 초월하는 어떤 영혼의 상태들을 그는 담담하게 풀어 내지만 읽는 이에게는 둥둥 울립이 됩니다.

그 울림의 한 구절만 소개 해 보자면......


메디나의 밤


'밤'은 우리에게 '통일성'을 깨닫게 해준다. 밤은 낮이 뚜렷하게 한정하고 서로 갈라 놓은 존재들을

통합하고 혼합한다. 빛은 실낱 같은 질투의 기미처럼 슬며서 사물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이 서로 관계가 없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밤이 되면 사물들은 마치 위험에

처한 배에 함께 탄 승객들처럼 한 덩어리가 된다. 그와 동시에 밤은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었고 우리가 사력을 다해 찾고 있었던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메디나의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며 우리가 인간보다 더 거대한 그 무엇에 다가가고

있다고 상상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밤을 통해서이다.


낮에는 빛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도시의 밤에는 별빛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뜨겁게 뿜어내는 우리의 욕망도 다 꺼지고 나야 비로서 빛이 살아나 그 광채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밤은 깜깜하고 무섭기만 한 존재였는데 우리의 못난 부분 잘난 부분을 하나로 얼버무려 버리고

감추어져 있던 부분을 드러내게 하여 볼 수 있게 해 준다합니다.

하....밤에 대한 역설이라 생각했는데 길을 잃고 헤매는 두려움에 빛을 안겨 주었습니다.

시골에 가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에 직면하고 두려움에 떨다가 밤하늘 총총 빛나는 별을 보고는

두려움도 잠시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별들의 잔치에 탄복하였지만 요런 깊이 있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 '장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

이 책은 그르니에가 젊은 시절 여행하거나 머물렀던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에서 느꼈던 인상을 내면화된 그만의 의미를 담아 표현 해 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풍경을 담아 내는 여행기가 아닌 존재하였던 그 순간 거기에서의 알아차림을

그만의 언어로 찬미하고 통찰하여 철학적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감탄하며 밑줄을 긋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밑줄을 긋다보니 책 한 페이지가 전부가 밑줄...안 되겠다 싶어 모서리를 접었는데

이 페이지 저 페이지 모서리가 접힙니다. ㅎㅎ


하지만 번역한 김화영 교수님이 언급하였던 바와 같이 어떤 형이상학적 시의 분위기를 읽어 내기 위해

집중력을 요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몇 페이지 안 읽어 저절로 빨려 들어감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조심스럽게 책을 덮으며 아쉬운 점은 장 그르니에의 이 빼어난 통찰과 표현을

이야기를 듣듯 그렇게 읽혀져 쏘옥 들어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불어를 우리 언어로 모국어처럼 표현 해 내기가 녹록하지는 않음이기도 하겠지만

철학적 통찰을 이야기 듣듯 이해할라고 한 그 자체가 욕심이고 건방짐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