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울진 여행 3 - 동해의 일출과 일몰

#경린 2020. 8. 29. 09:55

울진 '늘봄'

여행을 가면 숙소가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유명 관광지에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묵을 곳이 없어 낭패를 본 경험이 있음이기도 하고, 도심이야 깨끗한 숙소들이 많아 걱정 없으나 오래된 관광지의 오래된 숙소들은 어떻게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검색도 해 보고 로드뷰로도 찾아보아 괜찮다 싶은 곳을 예약하고 가지만 영 아닌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울진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숙소 예약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울진 어느 호텔은 비용은 호텔급인데 환경은 중급 모텔보다도 못하다는 후기가 올려져 있기도 하였는데 울진 죽변항 근처의 '늘봄'은 작은 호텔급 정도의 깨끗한 룸과 서비스가 가격 대비 좋았다는 후기들이 많아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2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혹시나 몰라 1박만 예약 하고 직접 본 뒤 나머지 1박도 예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예약한 '늘봄'은 바다가 보이는 넓은 창과 룸이 쾌적한 편이었고 아침에 간단한 조식도 제공되었습니다. 가족이 묵을 수 있는 룸도 있어 선택하기 좋았습니다. 바다쪽으로 난 넓은 창을 통해 동해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었지요. 같은 방으로 1박을 더 예약하려 했으나 이미 다음 손님이 예약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옆방을 예약했습니다. 창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어 바다 뷰가 더 넓었던 첫날 방에 비해 둘째 날 방은 창이 한쪽만 바다 뷰라 살짝 아쉽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방이라도 없었으면 우짤 뻔했나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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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일출과 죽변항 아침을 여는 사람들

첫날 일출은 숙소의 창가에 턱 괴고 앉아 보았습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곱 낀 눈으로도 환상적이었습니다. 쇼파에 앉아 동해의 일출을 보는 호사를 누리고 다시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 늦잠을 좀 더 잤습니다. 오래간만의 여행에 피곤하다는 핑계였지요. 다음날은 일출 시간에 맞추어 숙소 앞 바닷가 방파제에 나가 해를 맞이 했습니다. 바닷가는 한적하였고 바다 위로 내리 앉은 구름 속에서 아침 해가 늦잠을 자며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일출이 전날 만은 못했지만 인적 드문 바닷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상쾌함이 좋았습니다.

 

이른 아침 죽변항 구경을 가니 마침 문어잡이 배가 들어와  잡은 문어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엄청 큰 대왕 문어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중간 문어나 작은 문어는 한 마리씩 망에 넣어 둔 반면 대왕 문어는 보란 듯이 경매장 바닥 한가운데 엎어져 덩치와 힘자랑을 하며 필사적으로 도망 가려하였습니다. 하지만 경매 아저씨와 문어를 사 가려는 상인들의 발길에 빙 둘러 싸여 오도 가도 못하고 18만 원에 낙찰이 되어 바구니에 담겨 갔습니다. 대왕 문어, 중간 문어, 작은 문어 순으로 경매는 금방 끝이 나고 죽변항의 아침은 다시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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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죽변항, 동해에서 만나는 일몰

 

죽변항 근처의 치킨집에 파닭을 전화 주문하여 찾아 불영사 계곡 가서 놀다가 일몰 시간에 맞추어 죽변항으로 다시 왔습니다. 동해는 일출도 아름다웠지만 일몰의 저녁노을도 근사하였습니다. 대롱대롱 전구를 단 오징어 잡이 배가 노을을 바라보는 어촌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동해에서 만나는 일몰'이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 멋진 풍경화를 그려내었습니다. 해는 지고 경상북도 최북단 항구에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한적함을 안고 금방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싱싱한 회로 저녁 메뉴를 정하고 수산물 회 직판장으로 갔습니다. 울진에서 조금 더 올라간 강원도 쪽의 동해 바닷가에서 어처구니 없이 기가 차게 비싼 회를 먹었던 경험이 있는지라 조심스러웠습니다. 수족관에서 오징어가 싱싱하게 수영을 하고 있는 횟집이 보였습니다. 산오징어 한 마리 만원이라고 했습니다. 오징어를 하든 모둠으로 하든 기본 5만 원에 매운탕과 밥은 서비스라 했습니다.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해도 망설여지는 것은 가성비에 대한 확신이 없음이었습니다. 안을 보니 몇 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오징어도 다 팔리고 다섯 마리밖에 안 남았다며 먹고 가라 하셨습니다. "흠 오징어 회~"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갔습니다. 아주머니 말씀에 우리는 어느새 푸짐한 산오징어 섞은 모둠회 한 접시를 앞에 두고 흐뭇한 젓가락질이 바빴습니다. 서비스로 나온 매운탕이 졸여져서 그런지 좀 짜기도 하고 배도 불러 밥과 매운탕은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습니다.

 

어려서는 매운 고추를 먹지 못했는데 어느날부터 매운 고추를 즐겨 먹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집에서 고기 먹을 때는 청량고추는 상추와 함께 세트입니다. 많은 비와 더위에 푸성귀가 귀한 즈음이었는데 죽변항 근처의 밥집에서는 푸성귀 인심이 좋았습니다. 고기를 먹었던 가게도 회를 먹었던 가게도 직접 텃밭에서 나온 푸성귀와 땡초(맵고 작은 고추)를 넉넉히 주셨는데 고추는 크기도 생김새도 때깔도 제각각이라 도시의 마트에서 사 먹는 일정하고 예쁜 청양고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엄청 겁나게 매웠습니다. 도시의 마트로 들어오는 고추는 모양도 맛도 도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재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양고추를 즐겨 먹으면서도 한 개를 제대로 못 먹었던 죽변항 땡초 생각이 갑자기 났습니다.^^

  

늘봄 모텔 바로 앞 바닷가에는 방파제가 있는 모래사장이라 해수욕하기에도 좋았고 해변가에 소나무들이 있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름 바다가 한적하여 첫날은 모래사장을 독채로 전세 내어 바닷가에서 놀고, 둘쨋 날은 계곡으로 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울진의 자연환경은 여름 피서지로 참 매력적인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죽변항은 꽤나 규모가 있는 항구답게 피자, 치킨, 감자탕, 삼겹살, 회, 대게, 국수, 국밥, 김밥, 분식 등등 먹거리도 아주 다양하여 입맛대로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여름 피서지를 개척하였으니 내년에는 아이들 데리고 같이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