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두륜산 대흥사

#경린 2021. 3. 12. 21:13

대흥사 가기 전에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고 남도의 풍경을 조망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두륜산 케이블카는 현재 공사 중이라 못 탔다.

날씨가 흐림이라 다도해 앞바다를 환히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다른 곳에서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두륜산 케이블카 주차장에는 대흥사의 연리근을 형상화 해 놓았다.

 

 

해남 대흥사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찰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8개 절집 중 아직 못 가본 곳이라

이번 여행에서 제일로 기대가 큰 곳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고시 준비를 했던 곳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기운이 느껴질지 사뭇 궁금하기도 했다.

 

대흥사 주차장은 매표소 옆을 시작으로 중간지점과 절집 앞, 그렇게 3군데 있다.

우리는 매표소 옆 주차장에 주차하고 대흥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도보로 20~30분 정도 걸리는 길인데 도란도란 사부작사부작 산책하기 딱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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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정이 아니라면 대흥사 매표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물소리길을 따라 걸어보시기를 권한다.

대찰의 진입로만한 힐링로드가 그렇게 많지 않음이니 그만한 길 걷기가 쉽지 않다.

걸으며 만나게 되는 돌멩이, 나무, 물소리, 새소리, 풀꽃, 들꽃과 같은

어느 것 하나 세상을 거스르지 않는 것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다.

 

대흥사는 행정구역상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九林里) 장춘동(長春洞)에 속한다.

동서남북으로 깊은 산에 둘러 싸여 아홉 숲긴 봄을 품은 곳이다.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너부내 계곡 주위로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등

해묵은 노목들이 나무터널을 만들어 시기에 따라 저마다 연륜을 자랑하는

숲을 만들어주니 아홉 숲에 긴 봄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

깊은 숲 노목들이 보여주는 봄의 운치가 절로 느껴지는 것이

참으로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느낌은 절집만 봐서는 잘 못 느낄 수도 있다.

절집으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걸어봐야 함이다.

 

계곡을 타고 이어지는 오솔길의 동백숲

3월 첫 주가 남도 동백꽃의 절정인 듯하다.

어딜 가나 동백꽃이 흐드러져 나무에도 땅에도 내 맘에도 붉게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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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르다보면 대흥사 절집 못 가 계곡 옆에 위치한 유선여관이 나온다.

1915년에 지어졌다는 오래된 여관이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개조중이라 정신이 없었다.

원래 여관의 정문을 막아 버렸고 마당도 뜰도 모두 파헤쳐져

시멘트와 모래, 벽돌, 판자들, 그리고 인부들의 발걸음만이 분주하였다.

공동으로 사용하던 목욕탕과 화장실도 개별 방으로 넣는 공사가 진행 중인 듯했다.

코로나 시대라 이런 공사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공동 목욕탕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해서 예약을 포기했던 터였다.

그래도 100년 넘은 여관집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못 봐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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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입구 피안교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면

길 오른쪽으로 고승의 사리탑과 비석이 즐비한 부도밭이 나온다.

서산대사 이래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한 절집답게 부도탑의 규모도 대단하다.

유홍준 교수님은 대흥사를 방문할 때 초의선사 부도탑을 꼭 찾는다고 했다.

저 많은 부도탑 중에 초의선사 부도탑은 어디 있을까?

센스쟁이 지기가 찾아냈다.

많은 부도탑 중에 한 부도탑에 찻잔이 놓여 있었다.

핸폰으로 당겨서 보니 초의선사 부도탑이 맞았다.

 

반야교를 건너 해탈문을 지나면 두륜산 산자락과 딱 눈이 마주치게 되는데,

두륜산 능선의 절경에 ! 너무 멋지다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국토 최남단 빼어난 절경이 배경인 절집이라고 하는 말을 정말로

실감할 수 있는 비경이 쫘악 펼쳐지며 압도함이란 경험 해 봐야 실감한다.

 

대흥사는 천왕문이 없다.

그 이유는 북으로 영암 월출산, 남으로 송지 달마산,

동으로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절집을 감싸며

사천왕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비경이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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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는 양쪽에서 흘러드는 계곡을 끌어안아 4구역으로 나누어 가람을 배치하고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갈라놓은 것이 특이하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남원에는 법당과 승방이 있고,

천불전을 중심으로 한 북원과 그 위로 표충사와 부속건물, 대광명전과 부속건물이 있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넓은 평지 같은 곳에 가람이 여기 저기 분산되어 있기도 하고

여기저기 공사 중이기도 하여 좀은 산만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초목이 우거지면 좀 나을란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넓어서 둘러보기도 만만찮았다.

 

큰집에는 역시 다리도 많다.

금당천의 심진교를 건너면 야무지게 생긴 도깨비상이

돌계단 양쪽 머릿돌로 지키고 있는 대웅보전이 나온다.

사면에 빙 둘러 건물인 중정식 가람배치로 마당이 그렇게 넓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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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찰을 가면 명필들이 쓴 현판들을 만날 수 있는데 대흥사도 예외가 아니다.

대웅보전은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이고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살이 가면서 쓴 글이다.

이광사의 글은 바짝 말랐으며 획 하나하나에 골기가 느껴지는 반면,

김정희의 글은 통통하니 살지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인다고들 하는데 그들의 성격도 그러했을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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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 앞 500년 된 연리근

햇빛을 향해 바람에 부대끼고 눈보라를 함께 한

그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 연리근

500년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다정한 모습이 앞으로 500년 이상 더 함께 하여

천년의 사랑을 이어갈 것 같다. 같은 맘으로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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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 어는 곳에나 항상 부처님이 계신다는 의미에서

천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 천불전

그 문짝의 창살 무늬가 참 아름답다.

천불전에서 내려다 본 침계루는 돌담과 당우가 적절히 배치되어

큰 절집이지만 흐트러짐 없이 그 어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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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문을 들어서면 구국 정신을 기려 국가에서 건립한 호국도량 표충사가 있다.

밀양 표충사에서도 한 가람 안에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대흥사 역시 유교식 사당 건물이 가람에 함께 하고 있다.

서산대사의 의발이 대흥사에 봉안되면서 대흥사는 크게 일어났다한다.

서산대사, 사명당, 처영스님 등 세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표충사의 현판은 정조대왕의 필체이다. 글씨에서 품격이 느껴진다.

 

대흥사는 초의선사로 인해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와 동감내기 평생지기였다.

김정희는 초의선사에게 차를 배웠고 초의가 보내주는 차 마시기를 좋아했다 한다.

초의로부터 차가 늦게 오면 앙탈부리듯 간청했다하니

그 차 맛이 대찰의 운치만큼이나 멋졌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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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로 올라가는 내내 은은한 차 향기가 함께 하는 듯했고

속세의 번뇌를 잠시 떨쳐버리고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절집이 너무 넓게 퍼져 있어 지치는 감도 있었다.

거기다 점심때가 지난 시각이라 배꼽시계의 재촉으로

내려오는 길은 휘리릭이었다.

 

나는 대흥사가 첫걸음인 것에 반해 지기는 몇 년 전

동기들 모임으로 다녀 간 곳인데 모든 곳이 생경스럽다 하였다.

연리근 앞에서 사진을 찍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연리근인 줄도 몰랐고

내가 대흥사 사진을 면밀히 찍어 오라 주문을 해서 사진을 여러 장 찍기는 하였으나

대흥사로 오르는 길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도, 아홉 숲에 싸인 것도,

각 건물 현판의 글씨도, 천불전의 꽃문살도,

서산대사의 의발이 대흥사에 봉안 된 것도 몰랐다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다.

 

역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랑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