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봄이 오는 길목 해남과 강진에서

#경린 2021. 4. 4. 20:30

요즘은 코로나 신이 붙었는지 주말마다 비가 내린다.

그런다고 이 봄에 사람들이 집에 붙어 있을까마는

코로나 확산에는 조금의 도움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혼의 배고픔에 일용할 양식을 주지 못해

주말마다 내리는 비와 무서운 공포 영화의 배경처럼 다가오는 황사,

흐리멍텅하게 우울한 날씨가 원망스러운 봄일 것이다.

그나마도 출근길에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가로수 벚꽃이

4월이 되기도 전에 비바람에 흩날려 꽃비를 내리며 다 졌다.

벚꽃 엔딩으로 나무들은 연두빛 파스텔 터치를 열심히 하는 중

 

봄바람은 남에서 온다기에

내가 사는 곳도 남쪽이지만 더 남쪽으로 가면 더 빨리 봄을 만날 수 있을까

3월 첫 주에 떠났던 해남여행이 지나고 보니 참으로 절묘하였다.

 

강진을 살짝 스쳐 들어가 해남을 먼저 둘러보고 나오며 강진 이곳저곳을 다녔다.

강진은 해남과 장흥을 양쪽에 끼고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어촌마을이지만 해산물보다는 한정식이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강진으로 유배된 사대부나 왕족을 따라온 음식담당자들에 의해

한정식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곳에서 한정식을 직접 먹어보니 그럴듯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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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 출렁다리

 

<강진의 8개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곳 가우도>

 

가우도는 소머리와 생김새가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섬 양쪽으로 출렁다리가 놓여 쉽게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출렁다리라고 했는데 출렁대지는 않았다.

야무지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전혀 출렁임은 없었고

바다를 내려다보게 만들어진 투명유리구간도 아주 작은 사이즈라

다른 지역의 투명유리 다리에서 느낄 수 있었던 스릴은 없었다.

하지만 걸어서 10여분이면 에메랄드빛 바다를 건너 해풍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섬으로 입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다리임은 분명하다.

 

다리를 건너면 나무 데크길이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그대로 살려 만든 길이라 바다 풍광을 즐기며 산책할 수 있다.

1km 가량 가면 다시 출렁다리가 나온다. 마을로 들어가 볼 수 있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우리는 다시 돌아나오다

반대 편쪽에 진짜 출렁대는 출렁다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현재는 수리중이라 건너 가 보지는 못했다.

테크길에서 산쪽 가장자리로 목수국이 잎을 내고 있었다.

역시 남도의 봄은 빠르다.

그때만 해도 우리집 목수국은 겨울잠에서 깰랑말랑 하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목수국이 피면 푸른바다와 해풍이랑 잘 어울릴 듯하다.

 

참 가우도 출렁다리에는 짚트랙이 있다.

길이가 약 1km로 해상체험시설로는 전국에서 가장 길단다.

아무리 안전하다 하더라도 내가 저 짚트랙을 탈일은 없을 것이다.^^

 

윤선도 고택 녹우당

 

 

남도는 문화유산 답사 1번지로도 꼽히는데

해남과 강진에는 정약용, 윤선도, 김영랑, 고정희, 김남주의 자취를 안고 있기도 하다.

 

<윤선도 고택 녹우당>

 

집 뒤 300년 된 비자나무 숲의 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초록비가 내리듯 비 오는 소리와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 녹우당(綠雨堂)’.

고택 아래 유물전시관은 둘러볼 수 있었으나 녹우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까치발하고 담장 넘어 봄볕 안은 매화나무 웃음만 보고 왔다.

 

효종 임금이 사부였던 고산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지어준 집을

옮겨와 사랑채로 만들고 녹우당이란 이름을 붙였다한다.

임금이 하사한 집은 엄청난 명예이기도 하거니와 그 뜻을 오래 함께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하더라도 수원에서 해남 땅끝까지 집을 뜯어 옮겨 왔다는 것은 대단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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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생가

 

청춘을 감옥에서 불사른 짠하디 짠한 삶을 살다 간 김남주 시인의 생가와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전되었다.’던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다음 걸음으로 미루고 강진이 자랑하고 사랑하는 시인 김영랑 생가에 들렀다.

읍내 곳곳 길거리 발길 닿는 곳 여기저기 김영랑과 관련된 이름들을 쉬이 만날 수 있다.

김영랑 생가는 강진군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몇 차례 집주인이 바뀌었지만 1985년 강진군이 사들여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는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고 상당히 넓은 부엌이 인상적이었다.

영랑 김윤식이 강진 대지주의 장남이었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의 싯구가 절로 떠오르는 돌담에 담쟁이가 정겨웠고

모란이 피기까지를 기다리는 모란이 많이 심겨진 정원이 있었다.

뒤뜰에 대나무와 탐스러운 동백꽃, 마당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노목 은행나무는

영랑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시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듯했다.

 

해남과 강진여행을 가신다면 영랑이 태어나고 자란 집 툇마루에

슬쩍 걸터앉아 그의 시를 되새겨보는 호사를 꼭 누려 보시라 권하고 싶다.

 

 

꾸미지 않은 단순함이 더 아름다운 무위사 극락보전

깊은 숲 노목이 품은 긴 봄의 계곡과 함께하는 대흥사

이름도 아름다운 달마산 미황사(美黃寺)

해남 땅 끝 돌들을 모아 이룬 도솔암

동백숲을 꽃방석으로 깔고 앉은 백련사

 

굳은 의지의 다산의 삶이 깃든 초당

5백년 전통을 이어 후손이 머무르고 있는 고산의 고택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풍

병품처럼 호위 해 주던 암석품은 산들

들판을 물고 지어지던 해안선과 흩뿌린 듯 점점이 찍힌 작은 섬들

어딜가나 시선을 사로잡은 건강하고 찰진 붉은 황토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보낸 노목들과

붉은 동백과 다양한 색의 매화가 어딜가나 3합을 이루던 해남의 봄풍경

그 속에 피어난 시심들의 향기

 

지친 육신이 영혼을 만나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거닐었던 어느 봄날

남도의 봄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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