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어쩌다 보니 밭농사

#경린 2021. 12. 1. 22:25

5년 전 즈음 대지가 붙은 밭을 샀다. 땅을 몇 번 사고팔아 재미를 보았던지라 투자가 목적이었다. 돈을 은행에 넣어 둬 봐야 이자도 없고 딱히 뭔가를 하기도 그렇고 그냥 땅에 묵혀 두자 싶었다.

 

전원생활을 꿈꾸고는 있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과는 맞지 않는 땅이기도 하고 농사를 지어 본 적도 없어 밭을 그냥 묵혀 두고 있었다. 땅을 살 때만 해도 사실 그런 구체적인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작년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를 강제 처분할 예정이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1년의 유예기간을 준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친정아버지께 알렸더니 밭을 팔아야겠다며 부동산에 내놓았다. 다시 연락이 오면 그렇게 얘기하라고만 하셨다.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어영부영 그렇게 1년이 지나갔다.

 

그렇게 밭에 대해서는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올 6월 중순경 다시 통지서가 날라왔다. 6월 말까지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 농지 매매가의 20%를 추징금으로 내야 한다는 통보였다. 오마나 세상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파트가 호황을 누리자 땅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땅을 내 놓았지만 1년 동안 찾는 이가 1도 없었다. 보름 만에 땅이 팔릴 일은 만무하고 농사를 지어야 했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점점 날이 더워지고 있는 6월이라 하루라도 서둘러야 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학원 베란다에서 키우고 있는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다. 화분에 키운 것을 그대로 옮겨 심으면 날이 더워도 살아 내는데는 지장이 없을 듯했다.

 

몇 년 동안 방치된 밭은 풀과 칡넝쿨이 주인이었다. 그래도 새벽에 가서 풀과 칡넝쿨을 제거하고 제초매트를 깐 다음 나무를 심으면 될 것이라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잡초와 칡은 밀림 수준으로 무성하였고, 대지 빼고 나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했던 밭은 생각보다 넓었다. 칡넝쿨 때문에 잡초를 제거하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다. 너무너무 힘들었고 날은 무지하게 더웠다. 지기와 딸아이 그리고 동생까지 와서 거들어 준 덕분에 생색은 낼 정도까지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겨우 산림과의 검사를 통과할 정도였다.

 

내가 우리 땅을 너무 몰랐고 밭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여 고생이 더 많았다. 땅이 생각보다 넓었다. 칡을 들망초나 잡초와 같은 것 정도로 생각했다. 완전 돌밭인 줄도 몰랐고 돌밭을 일군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돌 때문에 제초 매트 고정핀은 박히지 않았고 땅이 파 지지 않아 나무 하나 심는 데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더운 날 나무를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늦은 장마가 시작되었다. 늦은 장마는 나에게 행운인 일이었다.

 

밭은 우리 집에서 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얼렁뚱땅 일을 마치고 난 뒤에도 주말이나 시간 날 때마다 밭에 갔다. 키우던 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에다 심어 놓고 오니 어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였다. 꽃나무들은 베란다에서 키울 때 보다 훨씬 건강 해 지고 자라기도 잘 자랐다. 학원베란다에 그렇게 많은 나무가 있었다는 것도 신기하였다.

 

날이 더워지자 풀과의 전쟁이었다. 갈 때마다 풀은 쑥쑥 자라 있었고 매트 못 구멍 사이사이를 뚫고도 올라왔다. 다행히 칡넝쿨은 제초 매트 아래에서는 맥을 못 추는지 그렇게 무성하게 올라오지는 않았다. 제일 강력한 잡초는 도깨비바늘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도깨비바늘 인지도 몰라 미나리 이파리 같은 잎을 가진 잡초라고 불렀었다.

 

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 칡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 여름에 너무 힘들어서 밭의 가장자리까지는 손도 못되었더니 칡이 완전 점령을 하여 엉망이 되었다. 가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칡넝쿨을 찾아내어 뇌두 부분을 자르고 칡 죽이는 약을 발랐다. 가장자리만 하면 된다 싶어 그것도 쉽게 생각했더니만 정말 장난 아니었다. 주말을 이용 해 거듭 작업을 해서 겨우 마무리를 지었다. 그랬더니 땅이 훨씬 더 넓어졌고 네모 반듯 해 졌다.

 

지나 간 일의 무용담처럼 지난여름 밭일하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자 울 아들 왈

"칡이 그렇게 많으면 그냥 칡 키우는 밭이라고 하면 되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말인데 정말 칡 밭이기는 했다

 

그렇게 여러 번 밭에 가서 다듬는 동안에도 친정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칠 것 같고 더운 날씨에 밭에 오셔서 일이라도 하시면 큰일이다 싶어서였다.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난 다음 말씀드렸다. 부모님께서 보시고는 깜짝 놀라시며 대견 해 하셨다. 밭일이라곤 한 번도 해 본 적도 없는데 어찌 이리도 잘해 놓았냐며 신기 해 하셨다. 그 칡넝쿨이 걱정이었는데 한시름 놓았다 하셨다. 이후 가끔 들릴 실 때 마다 눈에 보이는 칡넝쿨을 베기도 하고 돌을 날라 핀이 잘 고정되지 않은 제초 매트 위에 얹고 오신단다. 엄마는 깻잎을 따다가 지를 담았고, 호박을 따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갓이 3포기나 있어 캐 와 김치를 담기도 하셨단다.

 

내년에는 부모님 오시는 걸음 재미있게 몇 가지 조금씩 심어야겠다. 깻잎, 부추, 돼지감자, 오이고추, 호박.....그리고 밭의 가장자리에는 꽃들을 심어야 겠다.  처음에는 이 애물단지 땅 땡이 싶었다. 그런데 자꾸 찾아가 다듬다 보니 정이 가고 재미도 있었다. 어떻게 가꾸면 더 좋겠는지 궁리도 하게 되었다. 성질 급한 나는 벌써부터 봄을 기다리며 그동안 천덕꾸러기처럼 버려져 있던 땅의 환골탈태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