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오랜 친구들과 함께 (창녕 농막에서)

#경린 2021. 12. 1. 20:49

 

학교 때 친구들은 학교 다닐 때야 늘 붙어 다녔지만 결혼 후 뿔뿔이 흩어져 살아 얼굴 보기가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아이들 어느 정도 키우고나서야 그나마 시간을 만들어 1년에 한 번 정도 얼굴 보며 살게 되었다.

아직 자녀를 결혼시킨 친구는 없지만 학교 다니는 자녀가 없고 대부분 독립을 시킨 상태다.

같이 산다 해도 경제적으로는 독립을 한 터라 자녀나 남편에 대한 그러니까 주부로서의 의무감에서 어느 정도는 해방이 되어 얼굴 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코로나의 장벽은 높아 얼굴을 못 보고 지내다가 모두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끝내고 나서야 만나게 되었다.

수원 친구 농막에서 약 2년 만에 만남을 가지고 물꼬가 트여 창원 친구의 창녕 농막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옆지기들을 모두 대동하고 8명이 모였다.

 

SRT를 타고 내려온 수원 친구 부부를 픽업 해 호수가 보이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친구 농막 근처의 관룡사엘 갔다.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는 곳인데 소원 준비는 했냐고 물었더니,

친구 부부는 지금 이만큼만 더 이상의 소원이 없다 했다.

힘들었지만 열심히 살아온 중년의  편안한 모습이 좋아 보였다.

 

 

자영업으로 토요일 근무까지 마치고 온 부산 친구 부부가 합류하면서 8명이 모인 농막은 북적북적하였다.

친구 맞이를 한다고 비닐 천막을 쳐 식사할 공간을 만들고 처마를 달아낸 테크를 막아 남자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도 준비를 해 둔 것이 친구 부부의 손님맞이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농막 안주인인 친구는 손이 빠르고 부지런하며 일머리도 빠른 편이라 뭐든 척척 잘한다.

성정이 그러한지라 남편이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음이고 남편 하는 것마다 못마땅 해 늘 불만이 많았다.

농막 지을 때는 남편 손이 똥손이라 고생을 이만저만하지 않았고 지금 이렇게 만들어 가는 과정 하나하나 속 터지는 일이 태산이라고 토로하였다. 일은 혼자 독으로 하고 남편은 베짱이라고 푸념했었다.

수원 친구의 경우에는 남편이 뭐든 알아서 척척하는 편이고 친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반면 창녕 농막 친구는 입장이 그 반대라 더 속이 터지는 듯했다.

과연 친구 말처럼 남편이 그렇게 똥손이고 일을 못한단 말인가? 우리는 늘 그것이 궁금하였다.

 

 

창녕 농막 친구의 푸념은 그저 중년 부부의 투정이고 애증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현장 검증을 통해 알게 되었다.

농막 바깥 주인은 잠시도 앉아 있지 않고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친구와 우리들이 여기저기 흩어 놓으면 따라다니며 제자리를 찾아 놓았고, 식사 준비, 이것저것 잔 손질, 잠자리 준비 등 손도 아주 빠른 편이었다. 농막 관리 부분도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편이었다. 이쯤 되자 농막 안주인이 코너에 몰릴 지경이었다. 부부가 인정할 건 인정하고 서로 양보할 건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니 밤 깊은 농막에서의 저녁 파티는 더욱 화기애애 해졌다.

 

8명이 과연 이렇게 다 모일 수 있을까 싶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이 무난해서 일까 남편들도 그러하여 불협화음 없이 재미난 추억이 되었다.

좋은 분위기의 여파를 몰아 내년 봄에는 제주도 여행을 같이 가기로 약속하고 날까지 잡았다.

수원 친구 부부가 나이로는 막내라 총대를 매고 모든 준비를 하기로 했다.

 

 

배추 모종 100포기를 심었는데 노루가 와서 40여 포기를 뜯어먹어 버려 다시 한 판인 100포기를 심었단다. 그중 몇 포기는 뽑아 먹고 130여 포기 알이 차가고 있다는 김장배추에 생각이 모여 이번 모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배추는 아직 속이 덜 찬 상태였다. 수원 친구는 김치는 사먹는 것이라며 애초부터 배추는 가져가지 않겠다 하였고, 부산 친구는 다시 또 오기가 그렇다며 그나마 알이 찬 배추들만 골라 무와 파 같이 다듬어 싸 들고 갔다. 나는 김장배추는 알이 차야 제 맛이라는 생각이라 배추가 알이 차면 다시 들러 같이 김장을 담기로 했다. 각자가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 같은 분모라고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졸업까지 2년이 전부이고 그 이후로는 전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긴 시간 동안 각자의 세월의 강을 무사히 건너 가며 환한 모습으로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덕분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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