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이야기가 있는 절집 청평사

#경린 2021. 11. 11. 15:07

춘천 청평사 고려선원

 

청평사는 973년 백암 선원으로 창건되어 1,000년 이상을 이어 온 선원이다.

고려시대에는 이자현, 원진국사 승형, 문하시중 이암, 나옹왕사 등이.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보우, 환적당 등이 이곳에 머물렀다.

고려선원에 머문 당대 최고의 고승과 학자들은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였고,

뛰어난 문인들은 시문으로 이곳의 자연과 문화를 노래했다.

 

청평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시문과 설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고려시대 이자현은 37년간 청평사에 머물면서 청평사 주변 계곡에 암자와 정자 등을 조성하였는데

이렇게 조성된 고려선원은 자연과 인문학적 의미가 매우 크다.

구송 폭포를 비롯한 많은 폭포들이 계곡을 수놓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 보존된 선동과 서천 계곡, 이들을 에워싼 부용봉의 바위들이 청평사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청평사 안내문에 가져 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당대 최고의 고승과 학자들이 머물렀다는 곳

아름다운 자연과 재미난 설화가 어우러진 곳

어떤 곳일까 사뭇 궁금하였다.

 

청평사는 소양강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기도 한다 하는데

우리는 이른 아침의 산사를 만나기 위해 차를 이용하였다.

청평사 입구에 있는 캠핑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야 한다.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곳 즈음에 최근 만들어진 듯한 출렁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큰 절집 입구임을 알려 주는 상가들이 나온다.

상가들의 규모를 보면 절집의 규모나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발걸음 하는 곳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른 시간이라 상가마다 장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였다.

 

캠핑장 주차장에서 청평사까지 느린 걸음으로 30~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하지만 큰 오르막이 없고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를 따라 가는 길이라 지루하지 않은 길이었다.

활엽수들이 많았던 곳으로 기억되는데 가을 단풍이 참으로 아름다울 듯하다.

 

공주를 사랑했다는 상사뱀과 공주가 다정하게 눈 맞추고  있는 공주 동상

 

원 순제[元順帝:산동]의 공주를 사랑한 죄로 처형당한 청년이

뱀으로 화하여 공주에게 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상사뱀에 얽혀 갖은 고생을 하던 공주가 청평사에 와서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행한 뒤

상사뱀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원순제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삼층석탑(공주탑)을 청평사에 세웠다는 전설이 전한다.

 

공주 동상에는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와 만졌던 손이 반질반질 윤이 났다.

 

공주 동상을 지나 조금 더 가면 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거북바위가 나온다.

거북바위는 청평사 원림으로 진입하는 대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푸른 담으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가 아름다운 구송폭포(or구성폭포)-아홉그루 소나무 or 아홉가지 소리라고 한다.

거북바위를 지난 뒤 두 줄기의 가는 물줄기가 떨어지는 바위가 있어 그것이 구송 폭포 인가 하였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폭포의 길이도 너무 짧고 폭포 줄기를 담아내는 그릇도 그렇게 아름다운 폭포는 아닌 것 같다 하였더니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가 폭포 소리 요란한 폭포다운 아름다운 폭포가 나왔다.

 

구송폭포 구역에는 구송대, 구송정 터, 성향원터, 석굴, 삼층석탑 등이 남아 있다.

공주가 청평사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냈다는 석굴은 구송 폭포 바로 옆에 있다.

겨우 사람 하나 누울 수 있을 둥 말 둥 아주 작은 동굴이었다.

이 폭포에서 공주가 목욕재계를 하였나 했는데 공주탕은 절집 입구에 따로 있었다.

 

폭포를 지나 더 올라가면 사각형의 못인 영지(影池)가 나온다.

못의 수면을 고요하게 해 수면이 가지는 투영 효과에 의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연못이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청평사 영지를 보고 네모난 못에 천 층의 봉우리가 거꾸로 들어 있다(方塘倒揷千層峀)”고 표현했다.

청평사 뒤의 오봉산 암바위들이 그대로 비친다고 한다.

영지로 계곡물을 끓어 들인 수로가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만

계곡물이 석축 아래로 스며들어 영지 수면 아래에서 물이 솟아오르게 한 구조라고 한다.

그래서 수면이 더 고요한 느낌인 듯하다.

 

영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절집으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 선동교가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오봉산 견성암 봉우리 아래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절집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절집 바로 옆 계곡에 위치한 공주탕

동그란 형태의 아담한 욕조가 참으로 공주탕 다웠다.

 

계곡을 따라 주변의 자연경관을 최대한으로 살려 절집으로 건너가는 수로를 만들었다.

청평사의 가람은 경사지를 이용한 산지 사찰로 여러 개의 단을 조성하여

그 위에 절집이나 마당을 두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평사는 일주문이 없고 중문인 회전문(回轉門보물 제164)을 통해 대웅전으로 들어간다.

회전문이라고 해서 회전하는 방식의 문인 줄 알고 여기저기 찾았더랬다.

그런데 그런 회전문이 아니고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을 깨우치려는 의미를 가진 문이라고 한다.

청평사 회전문은 사천왕문을 대신하는 것으로,

중앙은 통로이고, 좌우에는 사천왕상을 안치할 수 있도록 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회전문만 남은 채 빈 절터로 되어 있던 것을

1977년 극락전의 복원을 시작으로 경내 대부분의 절집들이 복원되었다 한다.

 

회전문을 지나면 강선루가 나오는데 뭔가 중국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한전과 관음전이 양쪽에 위치 해 있고 바로 대웅전이 나온다.

 

대웅전 뒤 쪽으로는 삼성각과 극락보전이 있다.

산지를 이용 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형태라 번잡스럽지 않고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춘천 부사를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 박장원(朴長遠)은 시문집 《구당집(久堂集)》에서

청평사를 유람하며 이렇게 읊고 있다.

 

나라 안의 많은 명산을 수없이 보아왔건만

두 손을 마주 잡고 사면을 에워싸듯 두르면서

비거나 부족함이 없이 온화하고 빼어나며

기이하기로 이 산에 비길 곳 없도다 - 옮겨온 글

 

 

이자현이 선학에 매진하며 꾸민 청평사 원림은 기록상으로

영지 중심의 대규모 고려 정원임이 확인되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정원 중 가장 오래된 것이고,

일본 교토의 사이호사 고산수식의 정원보다 200여 년 앞 선 것이란다.

 

오봉산에 아늑하게 감싸인 청평사 원림

산수가 빼어난 계곡, 영지, 너럭바위, 기암괴석, 폭포 등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젓한 숲, 청량한 물소리의 계곡,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이어지는 이야기들

사찰을 둘러보는 것은 몇 분이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역시 좋았던 절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