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그리운 외할머니

#경린 2009. 8. 8. 11:23



그리운 외할머니 1 학생들 방학 때가 가까이 다가오자 저마다의 계획으로 삐약삐약 강의실이 수다스럽습니다. 외갓집, 친척집, 놀이동산, 수영장, 해수욕장, 어학연수, 해외여행, 견학, 템플스테이 기타등등 우리네 어렸을 때와는 사뭇다른 계획들입니다. 종류도 많고....^^ 그 중에서 귀에 속 들어와 그리움을 몰고 온 단어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산사체험과 생활체험.....




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하면 절에 사셨던 외할머니를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생활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4형제가 방학하면 복작복작하니 딸이 힘들거라 여기신 외할머니께서는 늘 울4남매 중에서 겨울에는 오빠를 여름에는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덕분에 절에서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고저녁하게 유년시절의 여름방학을 보내야 했었습니다.....^^ 그 때는 어린마음에 절간은 그리 썩 아니 많이 유쾌하지는 않았던 기억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 때가 문득문득 그리워집니다.




이른 새벽, 더 자라는 할머니의 따스한 다독거림보다는 밤 새 산짐승들의 울음에 파고 들었던 할머니의 품이 떠남이 더 두려워 꼬물꼬물 눈 비비고 일어나 햇살이 산 속의 숲에 퍼지기 전 차갑고 어두운 새벽공기를 더듬으며 할머니 뒤꽁무니를 따라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궁이에 불 지피시는 옆에 앉아 그 매운연기에 콜록콜록 기침 하며 불쏘시개 쑤셔 밥을 짓고 부처님께 맞이 밥 올릴며 두 손 모아 맞이 절하고 싸리비로 이슬 내린 절간의 뽀얀 마당을 비질하실 때 신발 발바닥으로 요리조리 흙그림 그리고 햇살 오르기 전에 김을 매야 한다고 서두르시는 할머니 따라 밭꼬랑에 앉아 풀꽃인형 만들어 솥곱살고 할머니를 졸졸 따라 다니며 흉내 낼 것은 다 흉내내며 따라 하고....조가비 손으로 거들고...




아침 공양하고 나면 감나무 아래로 쪼르르 달려가 밤새 바람에 비에 못 견디고 떨어진 풋감을 통통통 뛰어 다니며 줍는 손끝에 미소가 절로 묻어납니다. 그도 그럴것이 풋감을 개울물에 담궈 두면 맛있게 삭아 간식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개울에 감을 담궈 두면 낮 동안은 개구리 두꺼비의 장난감이었습니다. 굴리기도 하고 올라타기도 하고 이 쪽에서 저 쪽으로 패스도 해 감시롱....^^ 그렇게 개구리 두꺼비가 가지고 놀다가 두고 간 그 풋감이 말랑말랑 적당히 삭으면 참 맛있었습니다. 고 맛있는 삭은 감을 빨리 먹고 싶은 맘에 더디 삭는 감을 원망하며 탱글탱글한 풋감을 심술스럽게 쥐어 박 듯 물속으로 꾹꾹 누르기도 하고 아예 물 위로 떠오르지 않으면 더 빨리 삭을 것 같아 숨도 못 쉬게 호박잎을 따다가 차곡차곡 포옥 덮어 고 위에 돌을 얹어 두기도 하고...^^




절 마당이, 졸졸 흐르는 개울이, 초록 짙은 산등성이가 놀이터였습니다. 개울에서는 가재, 개구리, 두꺼비가 친구고 숲에서는 다람쥐랑 눈 맞추고 토끼랑 발 맞추고 이산과 저산에 작대기 걸치면 걸쳐지는 산꼴짜기 나만한 키의 나만한 생각을 가진 메아리가 또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말동무였습니다. 주지 스님께 옛날 얘기 들으며 감자떡 개떡도 쪼물딱 쪼물딱 예술적으로다 만들고......^^* 목탁 두드리며 염불하시는 옆에 좌불안석하고 앉아 자불다 폭 꼬구라져 이마에 퍼렇게 멍도 만들고...




밥 먹는 습관이 그때 길들여져 지금도 음식 남기는 것은 싫어합니다. 근데 요즘은 나이 들어가며 자꾸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이 친구하자고 해서 남는 음식을 그냥 에라 모르겠다하고 모른 척 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오! 부처님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용서 하소서^^ 산은 속세보다 해가 일찍 지는 곳 화려한 빨간 노을이 온 산을 진통하게 하고 암자에 산그림자가 내리기 시작하여 고저녁한 밤이 찾아올 신호를 보내면 영낙없이 저는 처마 밑 마루 끝에 양 볼 가득 뽀로통 그리운 엄마생각에 모든 것 떨쳐 버리고 오도마니 옹크리고 앉아 땅만 내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꼭 주지스님의 너털 웃음과 함께 날라오는 한 말씀... " 아이고, 이제 해 지나 보다 우리 동자 마루에 걸터 앉은 걸 보니...시계 보다 더 정확혀~ "




그 때가 그립습니다. 엄마 품이 그리워 파고들었던 외할머니의 품도 내음도 아궁이 속 발갛게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불꽃도 매운 연기도...콧구멍 까맣게 했던 그을음도... 거무티티 촌시럽지만 맛났던 감자떡 개떡도 개구리 두꺼비가 가지고 놀다 두고 갔던 개울물에 삭힌 말랑말랑한 감도..... 졸졸 정답게 흐르던 개울물과 돌사이 옹기종기 가재도 포근히 안아 주던 아담한 암자도 어린마음에도 운치 있어 보였던 아침의 산안개도... 내마음을 정갈하게 했던 그윽한 향내음도 풍경소리도.. 목탁소리도 ...주지스님의 염불소리도 밤새 울어 나를 무서움에 떨게 했던 늑대 울음조차도 이제는 모두모두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기억 속 저편에서 손 흔들며 미소 짓습니다. 아이들의 수다 속에 잠깐 피어 오른 고운 추억입니다.




2008. 7. 그리움을 몰고 왔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에 / 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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