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잠 안오는 밤 옴마생각

#경린 2009. 8. 8. 11:54


밑반찬을 챙겨 와서 냉장고에 직접 넣으시며 이것저것 챙기시는 엄마의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지난봄에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서 막내동생네 집에 댕겨 왔었던 때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작년 겨울 새아파트로 입주를 했는데 한 번 간다간다 하면서도 친정형제간들이 모두 흩어져 살기도 하고 주말과 휴일 스케쥴이 맞지를 않아 다 함께 모인 다는 게 쉽지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친정엄마가 하도 가고 싶어 하셔서 만사 뒤로 하고 모시고 올라 갔었드랬지요. 친정옴마가 막내동생네 새아파트 구경이 하고 싶은데 아부지는 시간이 없다 하시고 옴마 혼자서는 평생 어디를 다녀보신 경험이 없으신지라...선듯 나서지를 못하시고 큰딸에게라도 데려다 달라 하시고 싶은데 바로 말씀 못하시고 빙 둘러 넌지시 물으시니... 그 마음 어찌 모르리요.




옴마는 45년 시집살이 하면서 혼자 홀가분히 아부지를 떠나... 가정을 떠나...살림살이를 떠나... 나와 있기는 처음이라며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저희 아부지가 한 깨탈 하시는 분인지라 그 기분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 그 말씀하심이 가슴에서 나오시는 말이라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습니다. 동생집에 갔더니만 새아파트이기도 하고 그 보다는 역쉬 전업주부라 그런지 온 집안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우리집과는 영 딴판...크크크크 옴마랑 동생은 간만의 회포를 푼다고 수다가 정신 사납(?)을 정도였고 조카랑 저희 딸냄이는 여기 저기 뛰어 다디며 한 쌍의 팬더 마냥 뒹굴고.. 저는.. 일단은 집구경하고(안하모 서운해 한께...ㅋ) 곰순이 마냥 밥 먹어라고 할 때까지 자고...ㅎ 장시간 차를 타면 맥을 못 추는지라....^^ 참말로 이눔의 약골은 어딜가도 문제여.....ㅋㅋㅋ 근디 울옴마는 피곤 하시지도 않은 모양.... 목소리가 아주 쌩쌩.....^^ 올라오시기 전에 택배로 미리 몇 박스나 당신보다 먼저 보냈던 밑반찬에 대해 욜심히 설명하시고 직접 다시 챙기시고...아공....^^




한 상 잘 차려진 저녁밥을 먹으며 조카의 유치원 재롱발표회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우리 딸냄이 유치원 졸업한지가 꽤 되어 참으로 새롭게 느껴지고 어찌나 구엽든지...흐 옴마는 연신 그 많은 꼬맹이들 중에서 당신 손녀만을 눈으로 쫓으시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시고......연신 행복에 겨워 웃으셨습니다. 친정옴마는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있고 싶은 만큼 있다 와도 좋다는 아부지의 허락을 받고 온지라 간만의 자유(?)를 즐기시면서 한동안 동생 집에 머무르실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동생이 해 주는 편한 밥 묵으니 우찌나 좋은지....ㅋㅋㅋ 고대로 눌러 앉아 살고 싶었지만 월욜 또 삶의 현장으로 뛰어 들어야 하니 일찌감치 챙겨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내려왔었지요.




45년 만에 남편 품을...우리네 옴마들 스스로 갇혀 버렸던 듯한 울타리를 떠나 딸네 집으로 외출을 와서 환하게 웃으시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싸~아~~하면서 씁쓸했습니다..... 남편 뒷바라지에...자식 뒷바라지에... 당신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이제 다 늙어 꼬부라지고 아픈 육신으로 세상을 보고파 하며 울타리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찾아 홀가분하게 나선 곳이 기껏해야 딸네집이니.... 고렇게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간 딸네집이 남편밥보다 남편의 잔소리 보다 더 편하지 않으셨다며 예정하고 가셨던 날짜보다 더 일찍 내려오셨던 울 옴마 생각하니 절로 눈물 나는 밤입니다....

 




울옴마가 딸들에게 하는 18번 말씀 "너거는 옴마처럼 살지 말거레이 여자라꼬 해서 남자와 다를 기 엄따... 나쁜짓 빼고는 하고 싶은거 다 하고 넘 하는거는 다 해 보고 살아야 하는 기라..... 냉중에 나이묵고 육신 병들어 후회하지 말고...알것제!!" 근데 '여자라고 해서 남자와 다를 거는 없다'라는 말씀은 고때고때 사정에 따라 가끔 말씀을 바꾸시기도 합니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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