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지리산 노고단의 일출과 아버지

#경린 2010. 5. 21. 00:42

 


- 지리산 노고단의 일출 -

 



지리산 노고단 일출의 장관을 보는 순간 예전에 지리산에 갔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이었습니다. 아버지랑 중학생이었던 동생 그리고 저 셋이서 지리산엘 갔었지요. 빨간색 시외버스를 타고 덜컹덜컹 시골길을 달려.... 그 때 당시 발전이 뒤쳐졌던 전라도나 함양 쪽은 대부분이 비포장에 꼬불꼬불 그런 길이었지요. 어쩌다 버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한 쪽 버스는 최대한 산 쪽으로 붙어 주어야 했고, 지나가는 버스는 아슬아슬 곡예를 하며 지나가야 하는...... 그리고 한 사람이 내려 옆으로, 앞으로, 뒤로 손짓 발짓하며 버스의 바퀴가 논고랑으로 빠지지 않게끔 지휘를 했어야 했습니다. 가끔은 큰 바윗돌을 가져다가 움푹 패여 빠질 위험이 있는 곳을 받쳐 주기도 했어야 했구요.

 



오나가나 나서서 일하시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차들이 마주치게 될 때마다 버스에서 내리셔서 그렇게 지휘도 하시고, 바위 같은 큰 돌에 작은 돌들을 주워다가 축대처럼 공가(받쳐)주기도 하셨지요. 겁나게 일어났던 그 흙먼지들을 다 감수하시면서...... 심지어는 운전이 서툰 시골기사를 대신해서 직접 운전대를 잡고 그 혼잡을 해결하기도 하시고... 검은색 바지에 자주색 등산조끼를 입고 지휘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미소지어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셨던 우리 아버지셨습니다.,.ㅎㅎ

 



그 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내려왔던 오빠랑 마산무학산을 종주하면서 무진장,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뒤라 지리산 중산리 쪽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그리 험하게도 힘들게도 느껴 지지 않았습니다. 가을이라 다래가 주렁주렁.....참으로 탐스러웠습니다. 아버지께서 타잔처럼 으름 덩굴을 타고 다니시며 다래를 많이도 따 주셨드랬습니다. 아부지 어릴때 많이 따 먹던 것이라며...... 그 때의 아버지는 참 젊으셨는데...... 약골이라고 생각했던 큰 딸이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큰소리로 우리딸 참 대단하다고 하시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던 손길이...... 아버지.....당신을 그리니......... 눈가에 이슬이.......가슴이 콱......ㅠㅠ

 



장터목에서 1박을 하게 되었지요. 멀리서 갔고 두 딸을 데리고 오르다 보니 늦게 도착한지라 텐트를 칠만한 좋은 장소들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상태였고... 그때의 텐트촌도 지리산 가을의 단풍과 어우러져 참으로 장관이었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나무아래가 그 나마 산의 바람을 막아 줄 것이라 생각하여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는데 밤새 바람은 무던히도 많이 불었고, 나뭇잎은 비처럼 때로는 폭포수처럼 텐트위로 쏟아져 내렸었었습니다. 꼭 태풍이 몰아치는 듯 했고, 나뭇잎이 무더기로 쏟아질 때마다 비가 텐트를 쓸어 산 밑으로 곤두박질치게 할 것만 같았습니다. 10월의 지리산은 온 밤 내, 사랑을 빼았긴 사내같이 미친 듯이 울음을 토해 내었고 밤 새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는 밤새 두 딸을 위해 텐트 안 밖으로 다니시며 저희들에게 안도의 말씀을 해 주셨고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다독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새벽이 되었고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의 수선스러움으로 잠이 깨었드랬습니다. 텐트 입구를 쬐금 여니 밤새 울부짖었던 지리산의 한이, 눈물이 바람이 되었는지 한 겨울 보다도 더 거세게 몰아치는지라 에고고...얼른 닫아 버렸지요. 근데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니 막 환호에 괴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새벽 지리산의 그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아침준비를 하고 계셨고 코펠을 한 쪽 손에 들고서는 저희들에게 옷 단단히 입고 장관을 보러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때의 그 장관!! 바로 위의 노고단 일출의 사진과 똑 같았던 그 장관!!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도 제 뇌리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 그 장관!! 태양이 저 멀리 ....제가 서 있는 위치보다도 훨씬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떠오르면서 온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더니 찬란한 빛으로 감쌌습니다. 사랑을 잃고 밤새 울어 지친 지리산을, 추위에 떨고 있는 나무들을, 사람들을, 새들을, 짐승들을..... 계곡의 돌멩이며, 초라히 시들어 고개 숙인 이름 없는 풀꽃 하나 놓치지 않고 그렇게 골고루 빛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뒤 이어지는 구름의 운무....... 발아래에서 물밀듯이 밀고 올라오는 그 구름의 운무를 그 때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구름이 발가락 사이사이로 춤추며 간지럽히다..... 다리를 감고, 팔을, 가슴을, 두 뺨을 그리고 심장을.... 세상 모든 것을 깨끗하게 쓸어 정화시키고 하늘로 손 흔들며 사라지는 구름의 춤사위는 참으로 황홀했습니다. 제가 태양보다도 구름보다도 더 높이 있었던 그 순간... 세상에 이럴수가....와아~~하고 환상에 빠져 함성을 지르는 사이에 사라진....짧은 순간이었고,

 



열병 앓다가 사라지는 활화산 같은 사랑처럼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황홀감이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가슴 벅찬 감동은 두 번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밤 새 잠 못 이루게 하면서 울어 지샌 지리산이 해산한 일출을 보니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 “울 딸들이 복이 많아 이렇게 좋은 구경을 아버지가 하나 보다 “ 라고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지리산이 워낙에 높아서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고 이런 장관을 본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고 하시면서.......



출발할 때는 2박3일을 계획하고 갔었는데 밤이 어찌나 춥고 무섭든지 1박하고 계곡의 물소리 들으며 노고단으로 해서 내려 왔었지요. 그 때의 사진을 꺼내 보니 절로 손이 가 그리움으로 쓰다듬게 됩니다...... 지리산 보다도 더 늠름하셨던 아버지 참으로 젊고 당당하셨던 아버지 멋진 모습으로 천왕봉에 서서 미소 짓고 계시는 아버지.....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하고 이제는 제가 그 때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어버이의 그 은혜가 참으로 하늘같고 하해와 같이 넓음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멋진 부모가 될 수 있을지도 겁이 납니다. 아버지, 아버지처럼 좋은 거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께요.... 지켜봐 주세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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