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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박완서 / 박수근 그림

#경린 2011. 1. 25. 18:47
나무와 두 여인 / 박수근



그의 유작전 소식을 신문 문화면에서 읽고 마음먹고 찾아가 <나무와 여인>이라는 작은 소품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고, 그 때의 감동이랄까, 소름이 돋을 것 같은 충격을 참아내기 어려워 놓여나기 위해 쓴 게 내 처녀작 '나목'이다. 그는 왜 꽃 피거나 잎 무성한 나무를 그리지 못하고 한결같이 잎 떨군 나목만 그렸을까. 왜 나무 곁을 지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뭔가를 이고 있지 않으면 아이라도 업고 있는 걸까. 내 황폐한 마음엔 마냥 춥고 살벌하게만 보이던 겨울나무가 그의 눈엔 어찌 그리 늠름하고도 숨 쉬듯이 정겹게 비쳐졌을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제3부-'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 중에서





아직 다 읽지 못하고 침대 협탁 위에 펼쳐져 있는 책 박완서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이 책을 살 즈음 병환중이시라 들었었지만 마지막 유작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작가의 일상이 담백한 진술로 담겨진 산문집 첫페이지에는 작가의 사인이 들어가 있고 1부의 첫 꼭지 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 라고 쓰셨다. 자신이 마지막 발간하는 책이라는 것을 아셨던 것일까??


세 여인 / 박수근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2부-'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중에서



지난가을 내년에 뿌릴 꽃씨 받아 놓으셨을 것인데...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그리운 이 들과의 해후로 이어지는 못 가본 그 길에
꽃씨 하나 심으신 듯...
혹한 속이지만
못 가본 그 길이 봄날의
더 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꽃길이시길.....


귀로 / 박수근




소리 없이 나를 스쳐간 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줬다.나를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 까지는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1부_'내 생애의 밑줄' 중에서




나를 상처 내면서 지나가는 시간 들 그 상처를 쓰다듬고 달래며 치유해 주는 시간 들 더 성숙하라 하는 상처도 아픔을 이겨내게 해 주는 사랑도 신이 나를 솎아낼 때 까지 나와 함께 존재하며 가는 시간 속 친구 지금 할퀴어진 이 상처도 소리 없이 스쳐가고 있는 시간 속에 아물어 흉한 딱지 떨어지고 고운 새살 돋을 것이다.


절구질 하는 여인 / 박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