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이건 비밀인데요...^^

#경린 2010. 10. 26. 21:55

 





"원장쌤, 어떻게 되셨어요??" "뭐가??" 참새가 방앗간 드나 들 듯 학원 오면 꼭 나에게 눈도장을 찍고 가는 5학년 소라녀석 월요일 학원오자마자 뜬금없는 질문부터 한다. "그거 있잖아요. 남자친구 사귀기...ㅋㅋ ^^" "아하~~ ㅋㅋ 야 근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네...^^ 너는 고백했냐??"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아직 고백을 못했나보다. "왜 아직 못했어?? 금방 할 것 같더니..." "그게 좀 그렇잖아요..ㅋ^^" 청춘사업이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소라와 수희는 학원 오면 나한테 와서 눈도장을 찍고 한바탕 수다를 떨고 가는 5학년 여학생들이다. 오늘은 이랬어요 저랬어요 매일 같으면서도 다른 레퍼토리 들...^^ 그 순간은 나도 초딩 5학년이 되어 그들과 섞여 제법 대화가 된다. ^^





"원장쌤은 아직 결혼 안 하셨죠??" 하고...야들이 전혀 나에 대해서는 모르는 눈치..ㅋ 하긴 곰만디가 중등으로 가고 난 뒤로는 옴마라고 부르며 오는 녀석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시침 뚝 땠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보여요. 노처녀..ㅋㅋ" 노처녀....쩝 이거이 좋은 소리여 나쁜 소리여....^^ "남자친구는 있으세요??" "아니 없어, 넌 있니??" "녜" 덧니를 살짝 드러내며 웃는 눈웃음이 수줍으면서도 귀여운 수희... ^^ "그래?? 그 친구는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데??" 수희가 현재의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레퍼토리가 장황하게 이어지고 나는 적당히 놀란 척, 아주 관심이 많은 척 맞장구를 쳐 주었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우찌나 재미있었는지 이야기의 리듬에 맞춰 간간히 교무실에서 업무 보시던 선생님들의 웃음소리가 포인트처럼 이야기 속에 톡톡 찍혔다. ^^ 근데 울 초등수학쌤 중에 이번 가을 워크샵에서 서로서로 동료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적어 낸 개인 자료 중 '나의 굴욕 사건' 이라는 란에 이렇게 적은 분이 계셨다. <5학년 수희도 남자친구가 있는데 나는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 ^^




수희는 그닥 이뿐 얼굴은 아니다. 날씬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객관적인 관점으로 볼 때 못 하는 축에 속한다. ^^ 하지만 성격이 참 밝고 명랑하다. 아마 수희의 남자친구도 이런 수희의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았을까 싶다. ^^ 근데 수희랑 항상 단짝인 소라는 남자친구가 없단다. 그러면서 내 가까이 와 귓속말을 한다. "원장쌤 이건 비밀인데요.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있어요." "그래? 누군데? 같은학교 친구니?" "아니요. 학교는 다르고요. 울 학원 다녀요 00반의 000이요..ㅋㅋ" "그어래~~ 그럼 너도 수희처럼 먼저 좋아한다고 사궈보자고 해 보지 그러니??" 그런데 아직은 고백을 못했단다. 그러면서 나만 알고 있으라고 신신 당부한다. 그리고 서로 파이팅하잖다. 남자친구사귀기에......ㅋㅋ





월요일 학원오자마자 소라의 그 뜬금없는 "원장쌤 어떻게 됐어요??" 는 나는 그 이후 잊고 있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진지했던 일의 후속을 묻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자기네들의 눈높이에서 맘을 알아준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신나는 일인 것이다. 소라, 수희 둘 다 이번 학기 학교중간고사에서 성적이 많이 올랐다. 소라는 수학점수가 20점 이상 올랐고 평균도 껑충 뛰었다. 수희도 전과목 평균점이 90점 이상 나와 둘 다 상을 주기로 했다. 물론 그것이 내가 저들 맘의 소리를 들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노력 해 얻은 결과물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오늘도 등원하는 그 순간부터 어떤 얘기를 해 줄지 사뭇 궁금하고 그들이 기다려진다.^^ 2010. 10월 마지막 주 이건 비밀인데요...^^ / 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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