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저림

엄마의 식탁

#경린 2010. 10. 31. 00:02
진 화 (Evolution) / 박경범



며칠 전 친정부모님 드리려고 사 둔 단감박스를 들고 친정엘 갔다. 이 곳 저 곳 두 분이서 여행을 잘 다니시는지라 미리 전화를 해 두었더니 아침부터 안 온다고 울옴마는 전화로 성화이시다 점심은 꼭 집에 와서 먹고 가라고.... 오후 스케쥴이 있어 그 시간에 맞춰 갈 거라 했고 점심도 엄마한테 가서 먹을 거라고 했구만 그 사이를 못 기다리시고 자꾸 전화를 하신다. 혹여 다른 곳 가서 점심 먹을까봐 안달이시다 당신 정성으로 하신 점심 먹고 가라고....으이그^^


춤추는 연인 / 이일호




우리네 옛사람들이 귀한 손이 오면 따뜻한 밥 먹여 보내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라 생각해서일까 울옴마는 우리가 집엘 가면 무조건 밥부터 챙겨 먹이신다. 그것도 고봉으로....^^ 친정집 현관문 들어서기 바쁘게 엄마는 잘 차려진 식탁에 앉히기부터 하신다. 엄마의 정성은 나를 기다리며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오리불고기를 중심으로 자작하게 잘 졸여진 참조기새끼조림 엄마가 직접 키우셨다는 오이무침과 깻잎장아찌 3년 묵었는데도 윤기가 흐르는 김치 그리고 갖가지 나물들과 미역국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 김성복



그 식탁을 보는 순간 울곰만디가 할머니 식탁보고 하는 첫마디가 생각이 났다. “옴마, 꼭 꿈나라에 온 것 같아”...ㅋㅋ 곰만디나 나나 식성이 외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아 할머니의 식탁은 언제나 정말 환상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먹순이 다운 표현인 것 같다.^^ 그야말로 옴마 손맛과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을 보니 찡했다. 근데 고봉으로 그득 담긴 밥을 보니... “아이구 옴마, 밥이 넘 많다.” “못 먹으면 남기면 되지 묵을 만큼만 묵고 남기라“ 옴마 퍼 주시는 밥은 아무리 뭐라고해도 고봉에서 줄어들지를 않는다.^^ 결국 오늘도 다 먹지는 못했다.^^


양자선택 / 배효남



울엄마는 절대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드시지 않으신다. 대신 소고기와 오리고기는 가끔 드시고 생선을 자주 드신다. 그리고 끼니 때 마다 된장과 나물반찬은 빠지지 않는다. 이것이 엄마의 건강식이다. 하이고야 끼니 때 마다 나물반찬... 내는 절대로 몬한다...ㅋㅋ 그리고 끼니 때마다 국물있는 음식 고것도 내는 몬한다...ㅎㅎ 그기다가 삼겹살과 치킨을 몬 먹는다면 뭔 낙으로 사느냐구요....ㅎ


민초(民草)3 / 강관욱



아부지는 항상 그것이 불만이시다. 얌생이도 아닌데 풀만 준다꼬....ㅋㅋ 돼지고기는 물론이거니와 육고기 종류를 좋아하시다보니....맨날 그것으로 옥신각신.. 육고기도 육고기지만 울아부지는 된장찌개랑 나물반찬 없으면 또 불호령을 하신다. 울매나 까탈스러우신지 울옴마의 음식솜씨는 전적으로 울아부지 입맛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육고기가 자주 없는 식단에 불만을 토로하시지만 건강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한 번 편찮으셨던 뒤로는 엄마의 식단에 감사하신다.^^ 그리고 불룩 나오셨던 배도 지금은 쏙 들어가셔서 멀리서 보면 총각같다...ㅋㅋ 그렇게 날씬해진 아부지의 배를 보면서 울 옴마는 아주 자부심이 커시다. 당신의 식단이 아부지의 뱃살을 쏙 빠지게 만들어 주었다고.....^^ *얌생이 : 염소의 경상도 사투리


발레리나 / 방유신



따신 밥 묵고 옴마가 준비 해 주신 따뜻한 물까지 마시고 보니 베란다에 뭔가 잔뜩 널려 있었다. 엄마의 밥상에 홀려 미쳐 보지 못했던 엄마의 가을걷이 들이었다. 노란 치자 열매와 결명자, 빨간고추가 햇살을 받으며 온 몸을 풀어헤치고 꼬들꼬들 말라가는 중이었다. “ 엄마, 치자는 어디서 났어??” “아파트 울타리가 치자나무인데 아무도 안 따 가길래 내가 따가지고 왔지“ “ 결명자랑 고추는 샀어??” “사기는 아파트 텃밭에 씨를 뿌려서 거다 들였지”


The Blue sky / 정국택



결명자, 고추, 오이, 호박, 상추, 들깨 올 해 울옴마가 아파트 뒤 텃밭에 농사지은 것들이다. 다음 주에는 들깨를 털 예정이시란다. 봄에 한 대를 뿌렸는데 얼마나 수확을 할란지.. 한 대나 나올란지도 모르겠단다. 한 대를 뿌렸는데 한 대도 안 나오면 밑지는 장사를 하신 샘이다. 그래도 그것이 재미라고 하신다. 현관이며 거실 장식장에 누런호박도 여러개나 있었다. 옴마닮아 아주 귀엽게 생긴 호박들이...ㅋㅋ




이렇게 텃밭 가꾸시는 것을 좋아하시면서도 옴마는 절대 시골로 가서 살고 싶지는 않으시단다. 몇 해 전부터 아부지가 시골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산이나 창원근처의 반촌으로 가서 마당 넓은 집에 개도 키우고(아버지는 개을 아주 좋아하신다) 텃밭 가꾸며 살자고 하시는데 옴마는 반대를 하신다. 이유는, 나면서부터 아이 들 키우며 도시로 나오기 전까지 허리 빠지게,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서 다시는 농사지으며 살고 싶지 않으시단다. 농사를 짓자는 것이 아니고 그냥 지금처럼 텃밭이나 가꾸면서 살자는 것이라고 해도 절대 싫으시단다.




사람 북적북적 대는 도시가 좋으시단다. 대문만 나서면 당신 필요한 거 다 있는 도시가 좋으시단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된 도시가 딱 맘에 드신단다. 나 아프면 코 닿을 데 병원 있고, 해그름 마실 삼아 휘휘 둘러볼 수 있는 시장도 있고 (울옴마는 집을 고르실 때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는 것을 아직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도시사람들 거들떠보지도 않는 빈 땅 얼마든지 텃밭 만들 수도 있고, 시내버스만 타면 여기저기 가 볼 곳 천지인 그런 도시가 좋으시단다. *해그름 : 해질녘의 경상도 사투리




무엇보다도 외롭고 쓸쓸하고 너무 조용한 시골로 가서 살고 싶지 않으시단다. 나이가 들어 갈 수록 그 맘은 더 하시단다. 자연은 보고 싶을 때, 그리울 때‘ 찾아 가고 싶을 때, 바람 쐬고 싶을 때 차 타고 휑하니 가서 휘휘 둘러 봐야 속이 시원 해 질 것 같을 때 그럴 때 보면 된단다. 나는 지금은 아부지 의견에 완전 100% 동의하는데 나이 들어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텃밭 가꾸며 사는 것이 꿈인데 옴마처럼 나이가 들면...옴마 맘 같아 질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창원대 캠퍼스도 가을이 깊었다.



어쩌면 엄마는 자연의 모든 것을 그리움으로 품고 살고 싶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 만 뜨면 지겹도록 보는 그런 것이 아닌 그리움으로 보고 싶을 때 꺼내 보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으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파트베란다로 퍼져 들어오는 가을햇살에 꼬실꼬실 말라가고 있는 치자의 노란 웃음이 고추의 투명한 빨강이, 윤기 자르르 흐르는 결명자의 빤질함이...신발장 위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누런 호박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 울아부지, 옴마가 냉장고 있던 단감부터 먼저 드시라고 하셨건만 그 말은 귓둥으로 들으시고 내가 가져간 감부터 깎아 드셨다..맛나게...ㅋ


오늘 옴마가 주신 호박과 아부지와 우리들의 추억이 하나하나 깃들어 있는 수석 들



친정집 갔다가 창원대학 들어가기 전에 잠깐 경남도립미술관에 들렀다. 근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일이라 외부만 보고 왔다. 토요일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을 찾은 가족들이 제법 눈에 띄었는데 이 가을 그기다가 주말에 휴관을 하다니... 많이 아쉬웠다. 아쉬움만큼 바람이 우찌나 불어샀는지... 아궁...이러다가 금방 겨울이 올 것 같다. 10월 마지막 주말 바람이 엄청 많이 불었지만 엄마표 밥을 묵어 든든했다.^^ / 경린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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